예수는 없었다? “예수 부정”의 역사

신인(神人)의 종말이 가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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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eth Humphre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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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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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아니다. 태양신 쏠이다!
모자잌. 이탈리카 써빌, 스페인 2세기 AD.


천문관(館)에서

모자잌으로 되어잇는 일곱 성신(星神)의 이름으로부터 일주일 이름이 붙여졌다.

 

 

 

 

 

 

 

 

교수님이 말씀하신다

“그의 생년(生年)
은 AD 6년 혹은 5년으로 고쳐져야 한다. 물론 혹자는 AD 11년이나 7년을선호하기도 하지만…”
“그의 출생지는 베틀레헴이 아니다…이런 주장은 다만 구약의 예언을 충족시키려는 의도에 지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마도 나사렛에서 낳으셨을 것이다… 혹은 다른 작은 마을에서 낳으셨을지도 모른다…”

– Michael Grant (“예수”, p71,171)

 

 

 

 

 

 

 

 

 

 

 

 

역사는 감히 교회의 교리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 용감한 사상가들이 견뎌내야 했던 냉혹한 운명의 증인이 되었다.

 

 

 

진정한 순교자

1546년 불란서의 출판업자이며 책 판매상이고 학문에 대한 열정적 옹호자였던 Etienne Dolet 는 그의 교회에 대한 솔직한 비평 때문에 여러번 투옥되었다.


Dolet 은 그의 가족을 궁핍에 몰아놓은채 무신론자로 선고를 받고Lyons에서 그의 책과 함께 화형을 당했다.

 

 

 

1553 년 스페인사람으로 폐의 혈액 순환을 발견한 의사였던 (Galen 보다 진일보한 발견) Michael Servetus 는 캐톨릭 종교재판을 피하여 피신했다. 그는 개신교 지역으로 (도망)가면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이는 치명적 실수였다!
당시 제네바의 청교도 비숍이었던 죤 칼빈은그의 기독교인으로서의 업적을 쌓기 위하여Servetus를 이단으로 몰아 장작더위 위에서 화형시켜 버렸다. Servetus는 삼위일체와 유아세례를 비판하였다.

 

 

 

 

1589 년 켐부리지의Bene't (Corpus Christi)의 개별지도교수였던Francis Kett는 예수 그리스도가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처럼 대단한 도덕군자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그의 의구심을 표명하였다.
그의 대담성 덕분에 이 교수는 화형에 처해져서 재가 되었다.

 

 

 

 

1600 년 이태리의 철학자로 파리와Wittenberg 에서 가르치던 Giordano Bruno, 는 자신의 자유로운 사상을 펼쳤다가 궁극적인 (죄)값을 치렀다.
종교 재판 심문 기간동안 7년을 토굴감옥속에서 지내며 반복적인 고문으로 쇠약해진 그는 사형선고를 받고 화형에 쳐해졌다.
Bruno는 감히 우주 공간은 끝이 없으며 태양과 혹성들은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고 시사 했다.

 

 

 

 

1619 년 Lucilio Vanini ( 필명을 'Giulio Cesare' ,즉 “줄리어스 씨져”로 쓴 사람).
철학자요 선생이며 자유사상가 였다. 한때Carmelite의 신부였던Vanini는 1616년 경솔하게도 자신의 사상을 담은 “De admirandis naturae reginae deaeque mortalium arcanis”(여왕의 경이로운 비밀과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자들의 여신, 자연에 대하여?)를 출판하였다.
그는 인간이(흑인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을 가능성을 시사하였고 영혼의 불멸성을 부인하였다.
Vanini 는 기독교를 교직자들이 만들어 낸 허구로서 부인하였고 기적에 대한 자연과학적 해석을 논하였다. 그 결과 그는 캐톨릭 교단의 기소를 피하여 여기 저기로 도망다니는 신섹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결국 Toulouse에서 체포되어 혀를 짤리고 교수형에 쳐해진 후 불에 태워졌다.

 

 

 

 

Thomas Paine (1737-1809) – 자유 혁명의 챔피온. "나는 잔인한 모든 것들을 혐오한다. 그래서 나는 성경을 혐오한다”

 

 

 

 

 

 

 

 

Bruno Bauer (1809-1882) – 우상 타파주의자의 원조.

 

 

 

 

 

 

 

 

Kersey Graves (1813-1883) – 예수(이야기)의 사기성을 통찰한 퀘이커 교인.

 

 

 

 

 

 

 

 

종말이 가까왔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이미)포기되었을 뿐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의 (역사적) 실존조차도 심각한 의문에 붙여졌다”
세계의 가장 유능한 학자들중 일부는 그의 역사적 실존을 부인한다.
이 조사연구를 다루는 당당한 문헌들, 그리고 그 심각성에서의 강도와 연구의 철저함과 깊이가 모든 나라에서 증가하고, 그리스도가 신화라는 확신을 퍼뜨리고 있다.
예수는…그들의 환상적 생애와 활동들이 세계의 신화를만들어 낸 그런 일련의 반신반인(半神半人)의 무리중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게 될 것이다.

– Marshall J. Gauvin (예수는 진정 산 적이 있었나? 1922)

 

 

 

 

 

 

 

사해사본의 학자들

1970년 성서학자이며 사해사본의 전문가인John Allegro는 예수그리스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이사람의 논제는 마약으로 유발된 신인(神人)영상의 개념들에 관련된 것이다.
이 문제의 환각성 식물은Amanita Muscaria (Fly-Agaric)라는 것으로 (남성의)음경모양의 버섯이다. 이것을 초기 기독교인들이 복용했을 여지가 있으며 그들은 이를 처녀 탄생(즉 씨가 없이)으로 해석하고 “신이 육(肉)으로 오셨다”고 해석했다.
Allegro 는 격심한 분노의 대상이 되었으며 “도편추방”을 당했다. 그는 1988년에 사망하였다..

 

예수에 취했나?

 

 

 

 

 

 

 

다시 태어난 무신론자

“목욕탕 물을 모두 쏟아 버린 후 그 안에 아기가 없다”는 것을 발견한 전도사.

“그의 전 일생동안, 그와 동시대인중 그 누구도, 로마인도, 유태인도, 신자도, 불신자도, 그 어느 누구도 예수에 대하여 역사적 언급을 한 사람은 없다.”
(물론) 이것이 그의 실존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은) 세계에 거대한 충격을 가져온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을 사람에 대한 역사성에 확실하게 큰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누군가가 이 사실에 주목했어야 했다.
– Dan Barker, 신앙안에서 신앙을 잃다: 설교자로부터 무신론자(가 되기)까지 (1992, p. 360).

 

 

 

 

 

역사가 (家) 울타리를 떠나다

“나는 신화론이 역사적 실재론보다 현저하게 더 진실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전의 나의 불가지론은 이전의 역사론으로부터 나온 것이므로 나는 이것을 나의 이전의 입장에서 급선회 한 것으로 간주한다.

– Richard Carrier, Internet Infidels 편집장, 2005년 7월 18일

 

예수라는 사람은 없었다.-- 미친 생각이라고?

기독교에 기초한 문화권에서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부정한다는 것은 언듯 생각하면 어이없고 미친짓 처럼 보일 것이다. 그가 실제로 누구였고, 그가 정확히 어느 시대에 존재했었고, 그가 무슨 말을 했었는가에 대하여 많은 다른 의견들이 제시되고는 있지만 무엇보다도 (학계의) 주류학자들은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하는 식으로 논리가 전개될 것이니 말이다.

 

사실과 가상

오늘날 신약학자들은 두개의 세계(관) 사이의 길을 (교묘히 피해)간다. 첫번째 세계에서는 “신학적 예수(신의 아들)”를 무대의 중심에 놓고 있는데 물론 그들은 이 예수를 신앙의 문제로 인식한다. 또 다른 세계(관)은 역사적 예수에 관한 것이다.

제2 신전시대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역사, 문화, 그리고 정치(상황)에 대한 상세한, 그리고 매우 꼼꼼하게 진행된 역사연구로서 신빙성있는 역사적 배경이 생성되었는데 이를 배경으로 얇은 과자 조각 만큼이나 허술하게 구성된 “예수”가 이상한 모양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 환상적 구세주가 살고 죽고 부활하도록 허용하고, 그러므로서 그 가상의 그림자를 역사에 투영하게 한 것은 바로 이 역사적 (문)맥 그 자체다.

“우리는 (당시) 예루살렘이라는 도시가 존재했고 헤롯 대왕도 있었으며 로마인도 존재했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렇다면 왜 예수의 존재를 의심하는가?” 디스커버리 챤넬의 다규멘타리는 이런 식으로 시작할 수도 있겠다.

“이것이 예수가 신었을 수 있는 가죽신(샌달)이고 이것이 예수가 그 밑에서 휴식을 취했을 수도 있는 종류의 나무다.” (라고 말이다)

 

관성적인 어정쩡한 선택

직업적 역사가는 예수의 문제에 대하여 무슨 특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이 문제가 심한 논쟁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매우 잘 알 것이다.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부정하는 학자는 경멸을 당하거나 조롱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고 그들은 그들의 솔직함으로 얻는 것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문화권에서 양육되고 교육받은 대부분의 학자들은 예수가 실존했다는 가정에 안주하고 있거나 (그래서 대부분 성직자들로 구성된 성서학자들의 의견에 따르거나) 혹은 많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하여 그들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다는 조건을 감안하면서 그 불확실성을 “아마도”말로 시사한다.

그들은 겹겹의 외피로 덮여진 신화가 그(예수)에 대하여 어떤 것이라도 아는 것을 애매하게 만든다는 점을 논의하면서도 그들에게는 “전설속의 인물에 대한 그 어떤 가능성” 을 단언해 두는 것이 안전할 것이다.

이 안전하지만 뱃장없는 선택 덕분에 그 옛날 시골변방의 한 후미진 마을에 살고 있던 목수의 “애매모호함”이 유지되어 왔고 (“증거의 부존재가 부존재에 대한 증거는 아니다”) 동시에 “신앙의 문제”에서 자신들을 격리시킨 일단의 학자들을 유지시켜 왔는데 이들이야 말로 무명의 한 도사(구루)를 우상(偶像)의 신분으로 격상시킨 장본인들이다.


잘못된 각본(시나리오)

그렇지만 자신의 생전에 그 누구로부터도 주목받지 못한 한 무명의 존재가 세계적 종교를 일으킬 수 있을까? 한 방랑하는 랍비가, 살아 생전 어떤 저술로 남기지 않고, 고행자들과 점쟁이들과 무당들이 판쳤던 당시 세상에서 그 중의 한사람에 불과했던 존재가, 세기를 관통하여 울림을 갖는 마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을까?

미니말리스트(최소주의)적인 예수론은 예수의 부존재론보다 오히려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 이유는 새로운 종교에 대한 근원을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할 필요성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그 근원을 다른 곳에서 찾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 존재가 불분명한 인물이 필요하겠는가?

"기독교 신앙이 역사적 예수에 기초하여 세워졌다는 것은 매우 의심스럽다….예수는 단지 실용적 철학의 선생에 불과하다.
  – J. Macquarrie (An Existential Theology, p23)


우리가 만일 소요학파(逍遙學派)의 급진적 랍비로서의 예수가 역사적 기록에서 주목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용납한다면 같은 논리로 그러한 예수가 여럿이라는 생각을 용납하지 못할 이유도 없게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예수를 신의 독생자로서 기독교 신앙의 기초로 선택할 수 있을까? 만일 그 중 어느 한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그 중 아무도 아닐 것이다.

아마도 예수는 여러사람들을 현혹시키면서도 흔적을 남기지 않은 신적 존재로 유태인들에게가 아니고 단지 몇 안되는 그림자 같은 추종자들에게만 영향력을 획책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이 추종자들의 계승자들은 급속히 다수의, 서로간에 싸움질하는 파벌로 갈라져 가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예수는 단지 인간 정신에 의해 날조되어 모든 계기마다 모순과 누락으로 그 약점을 들어낸 조형물인지 모르겠다.

 


이성에 의한 구원

이율배반적이겠지만, 세상의 구원자요 신의 아들로서의 예수라는 영광의 구조물에 처음으로 금을 가게 만든 것은 자유사상가들이 아닌 다수의 진보(liberal)신학자들의 작업이었다.

교회의 소위 “하사받은 지혜”가 처음으로 도전을 받은 것은 유럽의 종교개혁기였는데 이때 교황제도에 대한 비판에 정당성이 부여되었다. 수문(水門)이 열리자 모든 교권과 성경자체에 문제가 제기되었고 개신교가 생겨나면서 다수의 교파가 생겨났다. 그러나 천년간에 걸친 교회의 강압적인 무지화 정책으로 인하여 (당시에는) 신학자들도 조차도 별 지식이 없었다. (대부분) 교회의 한직(閑職)을 차지하고 있던 이 학자들은 기독교 교리를 방어하기 위하여 “논리”라는 재 발견된 도구를 사용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이는 로만 개톨릭에서나 순수한 개신교에서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몇 세기가 지나 계몽주의 사상이 펼쳐지기 시작하자 용감한 신학자들이 기존의 성서에 나타난 명백한 오류와 부조화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키기 시작했다. 이들은 왜 신약성서는 예수의 생애의 대부분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는가를 질문한다. 또한 바울은 왜 (그의 서간에서) 예수의 생애에 대하여 별 언급이 없는가를 의문한다.

미국과 불란서 혁명기에 자유사상가들은 한 걸음 더 나가서 성경 전체에 대하여 그 진실성과 정확도에 의문을 던지면서 기독교를 사이비 미신과 억압의 도구로서 고발했다. 그래서 미니말리스트(최소주의)적인 신앙관인 자연신(자연신)론이 나왔는데 여기서 창조신은 인간사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다.


고등비판

그 이후의 연이은 세기에서도 급진적인 소수, 특히 19세기 중반의 독일의 튜빙겐 학파와 19세기 후반 내지는 20세기 초반에 걸친 화란의 급진적 비평가들은 기독교의 주님과 구원자란 단지 “경건한 날조”이며 그의 전 생애와 재판과정, 십자가 형은 유태교 성경으로부터 모방이라는 노선을 지속시켰다.ure.

기독교의 (눈을 질끔 감고 하는)속임수 너머를 볼 수있는 사람들에게는 예수에 관한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대부분 예수 이전의 우화들과 닮은 꼴이라는 것이 명백해 졌다. 여기에는 동일한 주연과 조연들이 등장하고 동일한 이야기 줄거리들과 동일한 교훈의 목적이 있다. 기독교는 그래서 하늘에서 떨어진 그 어떤 것이 아니고 인간의 생산물이라는 것이 명백해 졌다.

20세기에서는 이성주의와 고고학 그리고 새로운 과학적 연구기법이 도입되어 주기적인 종교적 열의의 부흥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방어자들을 움추려들게 하였다. 성경상의 부정할 수 없는 오류들에 대한 정보가 축적됨에 따라 이에 대처하기 위하여 파란 만장한 예수의 “생애”가 마치 햇빛 잘드는 연못에 피는 조류(藻類) 같이 번성하게 되었다.

대부분 기독교도들로 구성된 소위 “주류”신약학자들은 새로운 안식처를 발견해 냈다. 그들은 이미 신앙의 기초위에 축적된 날조의 층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 근저에 “역사적 예수”의 희미한 그림자가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신앙과 그들의 전 경력이 기념비적인 오류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두려운 이들은 여러가지의 희한한 생각에 투기(投機)를 건다. 급진적인 랍비로서의 예수, 지중해 연안의 농부 예수, 부인과 가족을 거느린 예수, 영국과 인도와 일본을 여행한 예수, 스토아 학파와 견유(犬儒)학파 철학자로서의 예수 등등, 한마디로 모든 계절과 모든 입맛에 맞는 예수를 상정한다. 신인(神人)에 대한 수백권의 자서전들이 경쟁적으로 나왔지만 이들은 모두 이 신성한 우화(禹話)를 받쳐줄 그 어떤 진실도 발견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피하려 획책한다.

 

종말의 날

21세기에 들어와서 우리는 성경적 사기를 벗겨 내는 작업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진척되고 있지만 전 지구적인 지정학이 성경적 근본주의에 자금을 대고 성경적 무오류성에 대하여 떠들썩한 재 성명을 고취 하고 있는 역설적인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여기서 잘못된 정보의 격류는 그 분량만으로도 압도적이라 하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도 없을 뿐 아니라 대량의 증거와 논의에 심취할 성향을 가지고 있지 않다. 기독교 옹호론자들은 기독교 신화론자들을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의 주변인으로 유리된 괴짜(이상한 사람)로 취급하면서 이들을 심각하게 고려할 가치가 없는 사안으로 몰아버릴 준비가 되어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 소리 높은 적대감은 그들의 영웅이 추락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들이 더 이상 부인하거나 억압할 수 없는 것은 예수가 날조된 존재라는 사실을 노출시키는 일이 단지 이상한 사람들의 조울(躁鬱)병적인 추구와는 거리가 멀며 수 많은 나라에서 많은 재능있는 학자들에 의하여 포용되고 시인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의 신화를 깨다---그 역사


지난 200여년 동안에 소수의 용감한 학자들이 감히 예수의 이야기에 의문을 제기하여 왔다. 그들은 개인에 대한 신체적 공격에 대한 위험과 그들의 경력을 망치는 것은 물론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성경이야기의 진실성에 대하여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였고 사기와 기만의 껍질들을 벗겨내면서 결국 신인(神人) 자신의 존재문제에 까지 도전장을 던졌다.

 

Hermann Samuel Reimarus (1694-1768).1778: “예수의 의도와 그의 가르침에 대하여”의 저자. 계몽사상가이며Hamburg Gymnasium의 동양언어학 교수. 사후에 출판된 그의 저서에서 그는 계시적 종교를 거부하고 자연신교를 주장하는 논의를 폈다. 그는 다분히 의도적인 사기와 수 많은 모순에 대하여 복음서의 저자들을고발하고 있다.

Francois Marie Arouet (Voltaire) (1694-1778) 계몽사상가중 가장 영향력을 가진 인물로 제수잇 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는 세상을 감염시킨 종교 중 가장 우스광 스럽고, 어이없으며, 피바람을 불러온 종교이다. 진짜 신은 여인으로부터 태어날 수도 없고 교수대에서 매달려 죽을 수 없으며 밀가루 반죽 조각을 먹지도 않는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는 투옥되었고 추방당했으며 그의 작품은 금지 되었고 불태워졌지만 불란서 혁명당시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그는 파리의 만신전에 안장되었다. 종교적 극단주의자가 그의 잔해를 훔쳐내어 이를 쓰레기 더미에 던져버렸다고 한다.

Count Constantine Volney, 1787 “제국의 멸망”의 저자. 나폴레옹 휘하의 조사관으로서 에집트에서 기독교의 원형에 대한 증거를 찾아냈다.

Edward Evanson, 1792,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네 복음전도자들간의 불일치와 그들의 진위에 대한 증거”의 저자. 영국의 이성주의자로 제4 복음서의 사도 저자론(즉 요한목음의 저자가 요한이라는 주장: 역자 주)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였고 몇몇 바울의 편지가 가짜라고 주장하였다.

Charles François Dupuis, 1794, “기독교 및 (모든 종교)의 성좌신화적 해석”의 저자. “진정한 진실보다 허무맹랑한 거짓은 더욱 빠르게 전파한다. 왜냐하면 이성적 판단보다는 맹목적인 믿음이 쉽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역사의 단순성보다는 낭만적인 경이로움을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자신의 저작이 폭력적인 반응을 일으키자 자신의 모든 저작을 파기했다.

Thomas Paine, 1795, “이성의 시대”의 저자.미국 독립을 처음으로 제기한 팜풀렛의 저자. (1776년, 상식(컴먼센스) 1791년, 인간의 권리)등을 썼다. 이 사람은 성경상에 나타난 모순과 포악성을 야비하다고 할 정도로 조롱했다. 다른 많은 미국 독립투사들과 같이 이 사람도 자연신론자였다:

“나는 유태인들의 교회나, 로만 캐톨릭 교회나, 희랍 교회나, 터키 교회나, 개신교 교회나, 혹은 그 밖에 내가 아는 그 어떤 교회들의 신조도 믿지 않는다….이들 교회들은 서로 다른 교회들의 믿음을 비방하지만 나로서는 이 모든 교회들의 신조를 믿지 않는다. –이성의 시대 중에서-

Robert Taylor, 1828, Syntagma, 기독교의 증거에 대하여 ; 1829, Diegesis를 썼다. 이 사람은 기독교의 신화적 근원을 주장한 죄로 투옥되었다. “초기 기독교는 이성의 원리, 선함의 원리,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간에, 그들의 인생역정에서 인간들에게 가장 이로움을 줄지도 모르는, 그런 원리의 인격화된 말씀, 그 이상을 의미한 것이 아니었다.”

Godfrey Higgins (1771-1834). 1836, Anacalypsis – An Attempt to Draw Aside the Veil of the Saitic Isis; or 언어, 국가, 그리고 종교의 근원에 대한 조사연구에 대하여. 영국의 고고학자로 푸리메이슨 이었다.

Bruno Bauer, 1841, 복음서의 역사와 공관복음서 비판 1877, Christus und die Caesaren. Der Hervorgang des Christentums aus dem romischen Griechentum. 우상 타파주의의 원조. 바울서간들의 진위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여기서 그는 세네카와 같은 스토아 학파의 영향을 감지하였다) 초기 기독교의 발생과정에서 필로의 역할에 주목. 예수의 역사성을 부정함. “예수에 관하여 알려진 모든 것은 상상의 세계에 속한다”고 주장. 그 결과 이사람은 조롱을 당한 끝에 1842년 튜빙겐의 신약학 교수직을 박탈당하였다.

Ralph Waldo Emerson, 1841, Essays. 한때 삼위일체를 믿는 기독교인 이었고 유니테리언 교회의 목사였다. 예수를 진짜 예언자로 믿음. 그러나 조직화된 기독교를 동방의 왕국으로 간주. “우리의 선데이 스쿨과, 교회와, 빈민사회는 우리 목의 멍에다”

Mitchell Logan, 1842, “기독교 신화의 베일을 벗기다”의 저자. “군림하는 의견은 그것이 얼마나 근거 없고 불합리 하더라도 항상 국가의 여왕이다”

Ferdinand Christian Baur, 1845, Paulus, der Apostel Jesu Christi. 독일 신학자로 바울의 목회서신(디모데 전서, 디모데 후서)뿐만 아니라 골로새서, 에베소서, 빌레몬서, 그리고 빌립보서를 가짜로 판명함. (바울의 편지중 중요한 4개만을 진짜로 간주) 이사람은 소위 튜빙겐 학파의 창시자였다.

David Friedrich Strauss, 1860, “예수 생애에 대한 비판적 탐색”의 저자. 루터란 교회의 교구목사출신의 학자로 성경상의 기적들이 모두 신화라는 사실을 매우 기술적으로 밝혀냄. 이 과정에서 예수의 신성을 부인하고 예수를 한 인간으로 격시킴. 이 바람에 그는 직장에서 쫒겨남.

Charles Bradlaugh, 1860,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 였는가? 예수는 무엇을 가르쳤나?”의 저자. 19세기 영국의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로 전국적 세속(世俗)단체인”National Secular Society”를 창립하였고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긍정권(right to affirm)을 획득하였다. 예수의 가르침을 비인간적인 수동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실용적인 권고로는 파멸적인 것이라고 비난하였다. 이 사람은 복음서를 예수에 관련된 신화로 폄하했다.

Ernest Renan, 1863, Das Leben Jesu.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예수전기의 저자. 캐톨릭 신부로 훈련을받았지만 독일 비평가들의 영향을 받아 낭만적인 예수전기를 썼다. 이 저작으로 그는 직장을 잃었다.

Robert Ingersoll, 1872, The Gods. 일리노이주의 대단한 연설가로 기독교를 맹렬하게 비난하였다. “나는 항상 인간들에게 무한대의 중요성을 가진 메세지를지니고 다른 세계에서 도래한 존재라면 적어도 그 메세지가 자신의 메세지임을 증명하는 서명 정도는 했어야 한다고 생각였다. (그런데) 단 한마디 말도 그리스도가 (직접)쓴 것은 없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Kersey Graves, 1875, The World's Sixteen Crucified Saviours. 펜실바니아주의 퀘이커 교도. 이 사람의 너무 앞선 결론은 매우 드물게 인용되기는 하지만 이 사람은 기독교의 날조과정에서 이방교도의 정신을 통찰했다.

Allard Pierson, 1879, De Bergrede en andere synoptische Fragmenten. 신학자이며 예술과 문학사 학자로서 산상수훈이 유대 지혜문학에서 유래된 금언모음이라는 것을 판명해 내었다. 이 사람의 저서 ”Bergrede” 의 출판을 기점으로 화란의 급진적 비평학파가시작된다. 이 사람은 사도 바울의 편지의 진위문제 뿐만 아니라 역사적 예수의 존재자체에 의문을 제기한다.

Bronson C. Keeler, 1881, A Short History of the Bible. 이 책은 기독교의 사기성을 고발하는 책으로는 고전이다.

Abraham Dirk Loman, 1882, "Quaestiones Paulinae," in Theologisch Tijdschrift. 암스텔담의 신학교수로 성경의 모든 서신들은2세기 이후에 작성되었다고 말했다. 이 사람은 기독교가 유대 사상과 로마- 헬레니즘 사상의 융합이라고 설명한다. 이 사람이 장님이 되었을때 그는 그의 먼 눈이 기독교의 검은 역사를 꿰 뚥어 보는 통찰력을 주었다고 말했다.

Thomas William Doane, 1882, Bible Myths and their Parallels in Other Religions. 이 책은 현재로는 시대에 뒤떨어진 측면이 있지만 성경에 나타난 신화나 기적들이 이미 이교도들의 경전에 나타나 있는 소재라는 것을 밝히는 고전이다.

Samuel Adrianus Naber, 1886, Verisimilia. Laceram conditionem Novi Testamenti exemplis illustrarunt et ab origine repetierunt. 성경 이야기에서 숨겨진 희랍신화를 통찰해 낸 고전학자.

Gerald Massey, 1886, Historical Jesus and Mythical Christ. 1907, Ancient Egypt-The Light of the World. 초기의 성직의 적대자로 부터 나온 또하나의 고전. 영국의 에집트 학자로 고대 에집트의 종교에 관한 6권의 저작이 있다.

Edwin Johnson, 1887, Antiqua mater. A Study of Christian Origins. 영국의 급진적 신학자로 초기 기독교도들을 ”Chrestiani” 즉 “해방자 디오니소스”의 신화를 수용(收用)하여 만들어 낸 자기희생의 신인(神人)인 선한 신(Chrestus) 의 추종자들로 파악. 12 사도의 이야기를 완전한 날조라고 주장. .

Rudolf Steck, 1888, Der Galaterbrief nach seiner Echtheit untersucht nebst kritischen Bemerkungen zu den Paulinischen Hauptbriefen. 급진적인 스위스 학자로 모든 바울서신을 가짜로 낙인을 찍었다.

Franz Hartman, 1889, The Life of Johoshua: “나사렛의 예언자” 의 저자

Willem Christiaan van Manen, 1896, Paulus. Leiden 대학의 교수이며 가장 유명한 화란의 급진파. 성직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부활을 믿지 않음. 수년간의 논쟁에 저항한 끝에 이 사람은 모든 바울서신은 가짜이며 사도행전은 요세프스(유대 고대사의 저자)의 저작에 의존했다 고 결론을 내렸다.

Joseph McCabe, 1897, Why I Left the Church. 1907, The Bible in Europe: an Inquiry into the Contribution of the Christian Religion to Civilization. 1914, The Sources of the Morality of the Gospels등의 저자. Franciscan 신부로 부터 전향한 무신론 전도자. 다작의 작가로 그리스도 신화의 많은 부분을 박살낸 사람이다 “복음서에 예수라는 인물은 없다. (그렇지만)여기에는 열명이 넘는 인물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기독교 창시자의 역사적 존재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Albert Schweitzer.1901, The Mystery of the Kingdom of God. 1906, 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 너무나도 유명한 독일 신학자이며 전도자 (그는 아프리카 크메룬에서 35년을 보냈다). 그는 진보신학자들의 인간적 예수론을 조롱했지만 동시에 화란의 급진파들의 연구업적을 인정하는 용기있는 사람이었다. 그 자신의 비관적인 결론은 이 수퍼히어로가 묵시적 광신자였으며 예수는 실망한 사람으로 죽었다는 것이다. 이 사람은 역사적 예수를 찾으려는 사람은 단지 자기 자신들의 반영(反影)을 발견할 뿐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Wilhelm Wrede, 1901, The Messianic Secret. 이 사람은 마가 복음에서 어떻게 초기 기독교 신앙에 의해서 엉터리 역사가 형성되었는지를 증명해 냈다.

George Robert Stowe Mead, 1903, Did Jesus Live 100 BC? ”Jeschu” 라는 유대인 이야기에 대한 논의. 이 이야기로 예수의 시대를 좀 더 이전으로 이전시켰다.

Thomas Whittaker, 1904, The Origins of Christianity. 예수를 신화로 선언.

William Benjamin Smith, 1906, Der vorchristliche Jesus. 1911, Die urchristliche Lehre des reingöttlichen Jesus. 싸이프러스 섬에 있던 기독교 이전의 예수종파 기원에 대한 논의

Albert Kalthoff, 1907, The Rise of Christianity. 또 다른 독일의 급진주의 학자로 기독교를 정신이상 현상으로 인식하였다. 그리스도는 근본적으로 묵시적 사회변혁을 목적하는 기독교 공동체의 초월적 원리였다.

Gerardus Bolland, 1907, De Evangelische Jozua. Leiden대학의 철학교수로 초기 기독교의 기원를 유대인 영지주의에서 찾았다. 신약성서의 수퍼스타는 구약에 등장하는 모세의 추종자인 “눈의 아들”로서 모세에 의하여 예수로 개명되었다. “처녀”는 다만 이스라엘인들을 상징할 뿐이다. "Netzerim"들이 알렉산드리아로부터 그들의 복음서를 팔레스타인으로 가져왔다.

1907년 교황 파이어스(Pius)10세는 교회 체제 안애서 활동하는 현대주의자(Modernist)들을 질책했다. 그리고 1910년 소위 “반 현대주의 맹서”가 도입되었다. (“Modernist”란 용어는 캐톨릭 사전에도 우리말로 나와있지 않아 편의상 현대주의로 번역하였음. 카톨릭 교회는 1967년 이 반 현대주의 맹서를 폐지하였음:역자 주)


Prosper Alfaric (1886-1955) 불란서의 신학교수로 파이어스 10세의 처사에 자극을 받고 그의 신앙을 포기하면서 이성주의적 운동을 위해 1909년 교회를 떠났다.

Mangasar Magurditch Mangasarian, 1909, The Truth About Jesus. Is He a Myth? 전 감리교 목사로 성경의 날조를 통찰했다.

Karl Kautsky, 1909, The Foundations of Christianity. 초기 사회주의자로 기독교를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John E. Remsburg, 1909, The Christ: A critical review and analysis of the evidences of His existence. 복음서는 모순 투성이. 예수가 (역사적으로) 실존했는가는 매우 의심스럽다. 초자연적인 그리스도란 확실히 교회의 교리일 뿐이다.

Arthur Drews, 1910, Die Christusmythe (The Christ Myth). 1910, Die Petruslegende (The Legend of St Peter). 1924, Die Entstehung des Christentums aus dem Gnostizismus (영지주의로 부터의 기독교의 출현) 이 출중한 독일 철학자는 그리스도가 신화라는 논쟁에 대한 독일이 배출한 가장 위대한 옹호자이다. 복음서는 선지자들과 유대 지혜문학에서 추출해 낸 기존의 신화적 존재인 예수를 “역사화”한 것이다. 예수의 수난 은 풀라톤의 사색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John Robertson, 1910, Christianity and Mythology. 1911, Pagan Christs. Studies in Comparative Hierology. 1917, The Jesus Problem. 이 사람은 예수의 이야기 줄거리와 기독교 이전의 십자가형 의식에 나타난 많은 요소들의 보편성에 주의를 돌렸다. 또한 여호수아/예수의 원전을 양의 형태인 고대 에브라임 신과 동일시 했다.

Gustaaf Adolf van den Bergh van Eysinga, 1912, Radical Views about the New Testament. 1918, Voorchristelijk Christendom. De vorbereiding van het Evangelie in de Hellenistische wereld. 신학자이며 대학교수직을 유지한 화란의 마지막 급진파.

Alexander Hislop, 1916, The Two Babylons. 이교도(다신교)적 의식과 로만 캐톨릭의 자잘한 의식(절차 및) 장신구들(의 유사성에) 대한 철저한 폭로.

Edward Carpenter, 1920, Pagan and Christian Creeds. 이교도(혹은 다신교)적인 기독교 기원에 대한 상세한 연구.

Rudolf Bultmann, 1921, The History of the Synoptic Tradition. 1941, Neues Testament und Mythologie. 루터란 신학자이며Marburg대학의 교수로서 소위 형식비평(form criticism)의 주창자이다. 복음서의 비 신화화에 많은 일을 했다. 그는 예수 설화를 신화의 언어로 쓴 신학으로 파악하였다. 신약성서는 예수의 이야기가 아니라 초기 기독교 신자들의 믿음에 대한 기록이라고 보았다. 그는 또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추구를 쓸데 없는 일로 치부하면서 “우리는 예수의 생애나 그의 인간성에 대하여 거의 아무것도 알 수 없다” 고 말했다. (Jesus and the Word, 8)

James Frazer, 1922, The Golden Bough. 종교를 통한, 마술로 부터 과학까지의 인간진보의 인류학적 해석. 기독교는 하나의 문화현상

P. L. Couchoud, 1924, Le mystère de Jesus.1939, 그리스도의 창조. 역사적 예수가 아닌 역사적 베드로를 신봉하였고 예수의 수난이 스데반의 죽음을 모델로 한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Georg Brandes, 1926, Jesus – A Myth. 요한 계시록을 신약성경의 가장 초기의 한 부분으로 간주하였다.

Joseph Wheless, 1926, Is It God's Word? An Exposition of the Fables and Mythology of the Bible and the Fallacies of Theology. 1930, Forgery in Christianity. 미국의 변호사. 미국의 바이블벨트(미국 남부의 일부로 기독교 세력이 매우 강한 지역: 역자 주)에서 성장하였지만 성경적 환상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Henri Delafosse, 1927, Les Lettres d’Ignace d’Antioche. 1928, "Les e'crits de Saint Paul," in Christianisme. 이그나티우스 (안티옥의 3대 비숍으로 사도 요한의 제자?로 알려진 사람: 역자 주)의 서간문들을 모두 후대의 날조라 폄하하였다.

L. Gordon Rylands, 1927, The Evolution of Christianity (기독교의 진화).1935, Did Jesus Ever Live?(예수는 산적이 있었나?)

John G. Jackson, 1933, Was Jesus Christ a Negro? 1937, Introduction To African Civilizations. 1941, Pagan Origins of the Christ Myth. 1970 Man, God, and Civilization. 1985, Christianity Before Christ. 가장 영향력 있는 흑인 무신론자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에디오피아와 에집트의 선례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Edouard Dujardin, 1938, Ancient History of the God Jesus.(신(神) 예수의 고대 역사)

Alvin Boyd Kuhn, 1944, Who is this King of Glory? 1970, Rebirth for Christianity. 예수는 결코 인간이 아니었고 다만 모든 인간에 내재하는 신적영혼의 상징이다.

Herbert Cutner, 1950, Jesus: God, Man, or Myth? 예수의 신화적 특성과 신화론자와 역사론자 사이의 논쟁을 요약했다. 신화론은 소설이 아니고 지속되고 있는 전통이다. 기독교는 이교도(다신교도)로 부터 기원했다.

Georges Las Vergnas, 1956, Pourquoi j'ai quitté l'Eglise romaine Besançon. 1958, Jésus-Christ a-t-il existé? Limoges 교구의 주교대리로 신앙을 잃었다. 기독교의 중심인물은 역사적 존재가 아니라는 논리를 폈다.

Georges Ory, 1961, An Analysis of Christian Origins.(기독교 기원의 분석)

Guy Fau, 1967, Le Fable de Jesus Christ.

John Allegro, 1970, The Sacred Mushroom and the Cross. 1979, The Dead Sea Scrolls and the Christian Myth. 예수는 마술버섯에 불과하고 그의 일생은 마약으로인한 환각상태에 대한 은유적 해석이다. 이 사람은 감옥에 가지는 않았지만 그의 경력을 망쳤다.

George Albert Wells, 1975, Did Jesus Exist? 1988, The Historical Evidence for Jesus. 1996, The Jesus Legend. 1998, Jesus Myth. 2004, Can We Trust the New Testament? Thoughts on the Reliability of Early Christian Testimony. 기독교는 유대의 지혜문학의 소산이다. 후대의 책들에 대하여는 실존했던 설교자들의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다.

Jean Magne, 1975, Christian Origins, I-II. 1989, III, IV. 1993, From Christianity to Gnosis and From Gnosis to Christianity: An Itinerary through the Texts to and from the Tree of Paradise. (기독교로 부터 영지주의 까지, 그리고 영지주의로부터 기독교까지: 낙원의 나무로부터 낙원의 나무까지 원문을 통한 여정)

Max Rieser, 1979, The True Founder of Christianity and the Hellenistic Philosophy. 기독교는 이산집단(디아스포라)의 유대인들에 의하여 시작되는데 (후에) 서기 70년이전 팔레스타인지방에 소급적용시켰다. 기독교는 팔레스타인에 가장 먼저들어온 것이 아니고 가장 나중에 들어왔다. 이것이 왜 기독교의 고고학적 발견이 로마지방에는 나타나지만 유대아에는 4세기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는 이유이다.

Abelard Reuchlin, 1979, The True Authorship of the New Testament. 음모론의 걸작: 로마 귀족Arius Calpurnius(“플라비우스 요세프스”로 더 잘 알려진 유태인. 유대 고대사의 저자: 역자 주)가 아주 새로운 종교를 날조하여 로마제국을 지배하려는 음모를 구몄다.

Karlheinz Deschner, 1986-2004, The Criminal History of Christianity, Volumes 1-8.(기독교 죄악사 1권-8권) 종교와 교회에 대한 독일의 선도적 비평가. 그는 1971년Nuremberg 법정에 소환되어 “교회 모욕죄”로 고발되었다.

Hermann Detering, 1992, Paulusbriefe ohne Paulus?: Die Paulusbriefe in der holländischen Radikalkritik. 화란의 급진적 전통을 이어받은 독일 목사. 예수도 바울도 없었다.

Gary Courtney, 1992, 2004 Et tu, Judas? Then Fall Jesus! (예수의)수난은 근본적으로 유대의 가면을 쓴 씨저(Caesar)의 운명을 아티스(Attis)신교의 죽음/ 부활 신앙에 이식시킨 것이다. 씨저의 유대인 팬들은 희생된 ‘인류 구원자’를 이사야서의 ‘고통받는 종’에 동화시켰다.

Michael Kalopoulos, 1995, The Great Lie(위대한 거짓말). 희랍의 역사가로 성경 원문과 희랍 신화간의 놀랄만한 유사성을 발견했다. 그는 종교의 간교하고, 속임수 많고, 동시에 권위주의적인 면모를 노정시켰다.

Gerd Lüdemann, 1998, The Great Deception: And What Jesus Really Said and Did. 2002, Paul: The Founder of Christianity. 2004, The Resurrection Of Christ: A Historical Inquiry. 25년간의 연구끝에, 이 독일인 교수는 기독교는 예수가 아닌 바울이 창시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이 사람은 감히 부활이 “경건한 자기기만”이라고 말했다가Göttingen대학의 신학교수직을 박탈당했다. 참 대단한 “학문의 자유” 보장이다!

Alvar Ellegard, 1999, Jesus One Hundred Years Before Christ. 기독교를 “의로운 선생”을 원형으로 한 예수와 함께 엣센종파에서 파생한 것으로 간주하였다.

D. Murdock (aka 'Acharya S') 1999, The Christ Conspiracy: The Greatest Story Ever Sold. 2004, Suns of God: Krishna, Buddha and Christ Unveiled. 기독교 신화를 타파함에 점성신학적인 측면을 부가시켰다. 이사람은 예수를 로마제국 통일을 위한 복합적인 신적존재로 간주하였다.

Earl Doherty, 1999, The Jesus Puzzle. Did Christianity Begin with a Mythical Christ? 2009, Jesus: Neither God Nor Man. 기독교가 어떻게 유대의 신화적, 묵시적 교파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강력한 선언. 예수는 필요하지 않았다!

Timothy Freke, Peter Gandy, 1999, The Jesus Mysteries. 2001, Jesus and the Lost Goddess : The Secret Teachings of the Original Christians. 예수 이야기와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간의 밀접한 관계를 탐구했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는 이교도(다신교)의 남신과 여신에 근거하고 있다.

Harold Liedner, 2000, The Fabrication of the Christ Myth. 복음서의 연대적 오기와 지리적 오류를 적발해냈다. 기독교는 역사상 가장 효과적인 사기다.

Robert Price, 2000, Deconstructing Jesus. 2003 Incredible Shrinking Son of Man: How Reliable Is the Gospel Tradition? 전직 목사이며 공인받은 학자로서 예수가 1세기의 여러 선지자들과, 신비한 사교집단의 구원자, 및 영지주의의 “에이온”을 합성한 허구의 혼합체임을 보였다.

Hal Childs, 2000, The Myth of the Historical Jesus and the Evolution of Consciousness. 신인(神人) 에 대한 심리치료사적 취급.

Michael Hoffman, 2000, 철학자이며 이론가로서 역사적 예수를 방기(放棄)했다.

Burton Mack, 2001,The Christian Myth: Origins, Logic, and Legacy. 신화 형성과정에서의 사회형성.

Luigi Cascioli, 2001, The Fable of Christ. 교황제도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사기제도임을 보였다.

Israel Finkelstein, Neil Silbermann, 2002, The Bible Unearthed: Archaeology's New Vision of Ancient Israel and the Origin of Its Sacred Texts. 용기있는 고고학자로서 유태교와 기독교 성립과정의 성스러운 이야기들은 모두 위조라는 것을 매우 기술적으로 증명하였다.

Frank R. Zindler, 2003, The Jesus the Jews Never Knew: Sepher Toldoth Yeshu and the Quest of the Historical Jesus in Jewish Sources. 유태교 문헌상에는 그 어느 곳에서도 메시아 환영의 증거는 찾을 수 없다.

Daniel Unterbrink, 2004, Judas the Galilean. The Flesh and Blood Jesus. 서기 6년의 조세 반란과 복음서의 환영(幻影)의 병행적 대응관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Tom Harpur, 2005, The Pagan Christ: Recovering the Lost Light. 카나다 출신의 신약학자이며 전 앵글리칸교회의 목사.

Kuhn과 Higgins 그리고 Massey의 사상을 다시한번 언급하였다. 예수는 신화이고 기독교 (신화)의 대부분의 생각들은 에집트로부터 기원한 것이다.

Francesco Carotta, 2005, Jesus Was Caesar: On the Julian Origin of Christianity. 모든 병행적 대응들의 총 집산. 놀랍게도 씨저가 예수였다고 주장.

Joseph Atwill, 2005, Caesar's Messiah: The Roman Conspiracy to Invent Jesus. 요세프스(유대 고대사의 저자)와 복음서의 유사성을 지적한 또 다른 저작. 이 사람은 당시 유대아의 정복자였던Vespasian과 Titus, 그리고 Domitian 등이 헬렌화 된 (즉 희립문화를 받아들인)유대인들을 동원하여 공격적인 유대교를 대신할 평화적 대체품을 확립할 목적으로 기독교 경전을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예수가 타이투스 풀라비우스였다고? 그것은 아닌것 같다.

Michel Onfray, 2005, Traité d'athéologie (2007 In Defence of Atheism) 불란서 철학자로 긍정적 무신론을 옹호하고 이 과정에서 역사적 예수의 가면을 벗겼다.

Kenneth Humphreys, 2005, Jesus Never Existed. 이 웹 싸이트의 책. 메시아적인 수퍼영웅에 대한 가장 확신이 가는 해설의 모음집. 저자는 이 진화하는, 악의적 종교에 대하여 사회, 역사적인 배경안에서 주석을 달았다.

Jay Raskin, 2006, The Evolution of Christs and Christianities. 학자이며 전 영화제작자로 유세비우스 (교회사의 전자. 역사 날조자로 유명: 역자 주)의 공식적인 연막을 넘어서 보고 단편적으로 조각난 그리스도 운동과, 몇개의 문학적 혹은 역사적 인물들로부터 정교하게 만들어진 복합적인 그리스도 상을 발견했다. 초기의 신화 형성과정은 “메리”라는 이름의 여자가 쓴 희곡일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끌쎄..

Thomas L. Thompson, 2006, The Messiah Myth. 신학자이고 대학의 학감이며Copenhagen학교의 역사가로 예수와 다윗은 둘 다 청동기 시대로 부터 기원된 근동지방의 신화적 주제의 혼합체로 결론을 내렸다.

Jan Irvin, Andrew Rutajit, 2006, Astrotheology and Shamanism: Unveiling the Law of Duality in Christianity and other Religions. 점성신학과 샤마니즘을 섭렵하고 정신병학적 물질에 대한John Allegro의 저작 을 옹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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