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못박다

 

This article first appeared in The Freethinker – June 2010

 

 

 

 

 

 기적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다 보면 남는 것이 별로 없고, 우리는 “역사적” 예수를 추구하는데에 따른 어려움들을 고려하기 시작하게 된다.

 

 

 

 

 

 

 

 

 

 

 

 

 

 다른 어떤 것이 될지는 몰라도 이것들은 목격자의 증언들은 아니다. 그리고 이 다분히 다른 저의가 내포된 이야기들은 2세기 후반 전까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내가 예수다. 내가 예수다. 내가 예수다…”

 

 예수의 전설과 고대 세계의 설화 사이의 많은 유사한 대응관계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거대한 우연의 열차? 우리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그 어떤 중요한 일도 하지 않았고 그 어떤 중요한 말도 하지 않은 하나의 예수는 종교 혁명의 촉매가 될수 없다.


메시아 설화 허물기.


무신론자들은 예수 이야기를 어디까지 받아드려야 할까?

내가 추측하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기독교 수파스타를 아마도 몇개의 현명한 말이나 떠들다가 당시 유대와 로마당국자들과 충돌하고 십자가에 처형된, “좋은 사람” 이란 막연한 인식으로 축소하여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일부 사람들은 기적이야기나 신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제외한 대부분의 성경이야기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들도 그들의 이성적 감각에 거슬리는 모든 조각들을 지워버린다. 그러나 그리고 나서 그들은 그들이 삶과 죽음의 확실성으로 생각되는 나머지 것들, -마리아라고 불리는 어머니,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자친구, 야고보라는 형제, 등등- 로부터 시작하여 “진실”이 그곳 어디엔가 숨겨져 있고 필요한 것은 (그 진실의 문을 열어줄) 열쇠 뿐이라는 열광자(熱狂者)의 확신으로 성문서들로부터 자유롭게 정보를 추출하여 그들은 그들 자신만의 세속적 예수를 꾸며낸다.

그러나 선전으로 수놓아진 현실(예를 들면 가이사르의 갈릭전쟁)과 신빙성 있게 들리는 역사적 배경 위에 놓여진 환상 (코난도일의 샬록홈즈와 같은 것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 예수의 이야기는 이 후자 -진부한 영웅을 다소간 사실적인 역사적 풍경에 삽입시킨 허구적 연극- 에 속하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 그리고 우리가 흔히 그런 (허구적) 인물로부터 기대할 수 있는 대로, 그 인물에 대한 동시대의 (역사적) 조회가 단 한건도 없고 그 인물이 일찌기 지구상을 걸었다는 확증을 줄 수 있는 단 한건의 진품 가공물도 없다.


창조론

전통적으로 “공인된”기독교의 기원은 “빅뱅”이론이다: 어느 화창한 날 신의 독생자가 처녀의 자궁에서 체현된다. 그는 성장하여 성인이 되고, 그의 복사(服事)들을 모으고, 그의 지혜를 전하며, 구속의 희생을 하고 부활한다. 그래서 한 종교가 태어난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이 ‘빅뱅’ 이론은 단지 “기독교는 존재한다, 그러니 어디서 부터인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것은 한 인물로 부터 시작 되었는데, 그는 과연 누구였나에 대해 내가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거론되는 인물들 중에는 견유(犬儒)학파 풍의 순회 철학자와 사회적 또는 종교적 개혁가들, 간디와 같은 평화주의자나, 혹은 체 게바라같은 투사가 포함된다. 사실 시체로 부터 발려낸 살고기 같이 예수는 쥴리우스 씨저(Julius Caesar,가이사르), 갈릴리의 유다(Judas the Galilean), 가말라의 요한(John of Gamala), 티이투스 시저(Titus Caesar) 등을 포함한 진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암호(해독으)로서 수 백번 “재형성 되었다”. 이 예수(가 누구였나에) 대한 생각의 편재(遍在)성은 많은 사람들을 이 전설의 외피 밑에 어떤 사람이 누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도록 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상상에 따라 또 다른 예수를 건설하기 전에, 도대체 우리가 믿고 단단히 붙잡을 데가 무엇인가? 한가지, 기적 같은 것들을 제거하는 일은 흔히 생각하듯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예수가 그의 제자들을 불러 모으는 간단한 사례를 생각해 보자. “그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그를 따랐다”는 것을 우리가 현지보고로 이해한다면 이것은 사실상 기적이다. 정상적인 세상에서는 단순히 사람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 신인(神人)과 어부들의 변형적 만남은,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라면, 다마스커스의 노상에서 바울이 맞닥드린 영상만큼이나 천상(天上)의 일이다. 만일 우리가 이 삽화를 (단순히 인간으로서의 예수가 제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상당 기간의 논의과정을 생략한 기록이라고 간주한다면 어차피 우리는 우리 자신만의 새로운 예수를 날조하는 과정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만일 기적을 제거한다면 – 예를 들어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서” 라는 귀절을 보자- 우리는 정말 그가 광야로 들어갔다고 추축할 어떤 이유라도 있는가? 그가 ”변형”되지 않았다면 그가 산에 올라갔을까? 그가 물 위를 걷지 않았다면 그가 호수 가에 갔을까? 그가 물을 포도주로 만들지 않았다면 애초부터 결혼잔치에 갔었을까? 이 조우(遭遇)를 정의해 주는 기적을 빼 버리면 예수의 이야기중 의미있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기적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다 보면 남는 것이 별로 없고 대신 우리는 “역사적” 예수를 추구하는데에 따른 어려움들을 고려하기 시작하게 된다.

기적이 수반되지 않은 삽화(揷話)는 의미가 있나? “성전 정화 사건”은 꽤 그럴듯하게 들린다. 그러나 이 성전에 주랑(柱廊)으로 둘러싸인 35에이커(약 3만5천평)가 넘는 광대한 중앙광장이 있고 유월절에는 수천명의 순례자들이 떼지어 몰려왔었다는 (그리고 단지 수명의 성전 경비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사실을 깨닫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질 것이다. 예수가 정말 단신으로 환전상들과 숫소 떼들과 양떼와 비둘기 판매상들을 몰아냈을까? 복음서는 대히트 영화속의 영웅으로나 적합한 폭한(暴漢)의 연기를 기술하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사건의 규모를 작은 난투극 정도로 줄이거나 –아니면 (더 정확하게)이 상상의 사건은 구약의 성전 (이 경우 스가랴 14장 25절과 호세아 9장 15절)이야기로부터 꾸며낸 이야기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현세적이고 그럴듯 하게 들리는 세부 묘사 조차도 문제가 많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의 “천하로 다 호적하라(2장2절)”이나 마태복음의 “헤롯이 박사들에게…두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2장16절) (이 이야기는 다른 복음서 저자들도 모르고 있었다) 등이 있다. 예수가 왕래했던 현장들 중 상당수( 막달라 , 아리마대, 엠마오, 가나, 등등)가 고고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1세기의 나사렛 조차도 의심스럽다 (확실히 복음서가 주장하는 ‘도시’는 없었다). 잔잔한 디베라(Chinnereth) 호수는 폭풍이 몰아치는 갈릴리 바다로 둔갑되어 예수가 바다를 가라않히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재판은 (여섯번의 청문회!)은 우리에게 알려진 모든 고대 유대법과 상충된다. 복음서가 그려놓은 빌라도의 인물상은 다른 모든 역사적 자료로 부터의 증거와 맞지 않는다. 이런 어려움은 게속되고 또 게속된다.

우리가 복음서 이야기들을 받아들여 모든 기적 이야기들을 제거하고 그 나머지로 단순히 우리가 진짜 예수라 믿을 만한 인물상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날조

고대의 증언들은 상당히 자유롭게 선전과, 전설, 그리고 그럴듯한 사실들을 엮어냈다. 그러나 복음서는 매우 다른 종류의 문서다. 예수 이야기에서 특이한 점은 사기성이 농후한 교회가 유일한 증인들의 진술로서 제시한 이 이야기의 사중 구조에 있다. (교회는) 이 증인들 간에 존재하는 너무도 눈에 띄는 상호 모순들을 (뻔뻔스럽게도) 진솔한 관점의 차이로 치부하지만 그 것들은 그런 종류가 아니다.

역사학자나 신약성서 학자들이 잘 알고 있는 하나는 예수의 이야기가 원전으로부터 어떻게 개발되어 변천되었는가에 대한 궤적이다.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 그리고 어느 정도는 제4 복음서 까지, 무명의 저자에 의해 확실치 않은 연대에 쓰여진, 오직 교회만이 전통적으로 ‘마가’라고 명명한, 간결한 원전의 이야기(기적적인 탄생이야기와 사후현신(死後顯身)을 제외한) 위에 건설되었다. 마태는 이 이야기를 다른 한 방향으로 끌고 가면서 우리의 호기심을 돋게하는 마가의 지리에 대한 오류와 유대 관습에 대한 오류들을 ‘정정’하면서 원문에 “예언”들을 다져 넣는다. 반면 누가는 약간의 역사적 정확성을 위해 요세프스의 저작들을 그 위에 쳐발랐다. 요한의 예수는 공관복음서의 영웅과는 매우 달라서 (요한복음에 기술된) 예수의 전기는 전혀 호환성이 없다.

다른 어떤 것이 될지는 몰라도 이것들은 목격자의 증언들은 아니다. 그리고 다분히 다른 저의가 내포된 이 이야기들은 2세기 후반 전까지는 전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 모든 어려움들을 인식하게 된 신약성서 학자들은 복음서 이야기들에 앞서는 가지각색의 “전통”들을 긍정적으로 가정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 초기의 전통들은 예수에 대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가?

바울의 기독론은 부활한 예수를 강조하면서 인간 예수에 대한 언급은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 그리고 이는 예루살렘 “기둥”의 기독론과는 매우 다른 성질의 것이다. 바울 자신은 예수가 아닌 세례 요한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포함한 몇몇개의 경쟁 교파들을 혹평하였다. 이는 우리가 전통적 기독교의 한계를 벗어나서 그 외부로 우리들의 발걸음을 옮기기 전의 이야기다.

신약성서는 그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요세프스가 언급한 네 개의 유대 종파 중 하나인 엣센 종파는 여러가지 측면에서 기독교를 예상하고 있었다. 교회사 학자인 유세비우스(Eusebius)는 에집트의 쎄라퓨트(Therapeuts, 이 종파(?)에 대해서는 필로(Philo)가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만 필로는 예수나 기독교에 대하여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를 초기 기도교의 승려들로서 치켜세우고 있지만 그들은 기독교 시대가 열리기 이전부터 널리 확립되어 있었다. 2세기의 이단으로부터 기원했다는 주장과는 매우 다르게, 광범위한 변종의 비교적(秘敎的) 우애단체인 영지주의 종파는 정통파가 뿌리를 내리기 전부터 확실하게 활동하고 있었고 일반적으로 믿어지기로는 그들의 신은 결코 인간의 형태를 취한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들 중 도세태(Docetae)는 예수가 “육신을 입었다”는 것을 거부하여 바울을 짜증나게 만든 종파이다. 아주 확실한 사실은 완전히 이질적인 형태의 기독교 (혹은 가-기독교)가 예수가 출발점에 서기도 전부터 이미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기독교 운동이 그 창시자라는 사람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면, 특별히 많은 분량을 유대 경전의 선례들-그 것들이 아담, 모세, 에녹, 멜기세덱, 엘리야. 엘리샤 등등 누구로 부터 추출되었든지 간에, 집합적으로 예수의 말과 행위의 거대한 예감을 준- 그런 선례들에 빗지고 있음이 확실한, 이 가늘게 뽑아낸 “예수의 일생” 을 가지고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한가지 예로서 많은 다른 예들을 대신해 보자: 모리아의 남쪽편 언덕에서 엘리샤는 과부의 죽은 외아들을 살려낸다 (열왕기 하 4장 32절-35절); 같은 언덕의 북쪽에서 예수도 늙은 여자의 죽은 와아들을 살려낸다.(누가 복음 7장 11절-15절) 우리는 간단하게 ‘표절’이라는 설명을 받아드리는 대신 (예언의) 실현이라고 우기는 기독교 옹호자의 주장을 받아들여야 할까?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는 기독교 서기관들이 유대 경전 (희랍어 판 70인 역)에 저인망을 쳐서 그들의 신인(神人)에 대한 증거들을 낚아 올린 것을 안다. 그러나 그들이 추구한 것은 확인이 아니라 영감이었다!

예수의 전설과 고대 세계의 설화 사이의 많은 유사한 대응관계에 대하여 우리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을까? 거대한 우연의 열차? 우리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당혹감에 빠진 교부들 조차도 악마의 모조품에 대해 말했다. 사탄 자신이 이 유대인 예언자의 진짜 메세지를 이해하고 그래서 예수가 도착하기 수세기 전에 기독교를 선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악마가 예언을 읽어내고 한 두개의 예수를 축조해 낼 수 있었다면 왜 기독교 서기관들은 똑같이 못했을까?

사실은, 그 사건이 있었다는 시기부터 수십년 이후 부터나 쓰여지기 시작한 복음서 이전에는, 예수의 위업에 대한 아무런 흔적이나 언급이 절대적으로 없었다는 점이다. 고대의 안개를 꿰 뚥기에 필사적인 나머지, 일부 학자들은 역사적 예수의 입에서 기원된 것들로 여겨지는 가르침의 초기의 “층(層)”들을 인식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말씀의 전통” (도마 복음서에서와 같이)이 이 현명한 말씀들의 유일한 저자를 지적해 줄까? 성경 자체가 이 의문에 해답을 준다. 우리는 (솔로몬이 썼다는) 잠언과 (다윗 왕이 썼다는) 시편에 말씀들의 모음을 가지고 있다. 이 두 공인증(公認證)은 모두 역사적으로 유효하지 않다; 그보다는 우리는 새로운 새로운 저작에 대한 권위와 명성을 얻어내기 위해 그 저작권을 가짜로 과거의 명성있는 인물에게 (그 인물의 역사성이 의문스럽다 하더라도!) 돌리는 것이 고대세계에서 표준적 관습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말씀의 전통”에 더욱 치명적인 것은 그 누구도 당시로는 눈부신 것으로 인정되었을 이 가르침들을 기록하는데 명백히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만일 시리아, 갈릴리, 데카폴리스, 그리고 유대아를 통하여 (살고 있던) “거대한 다수”가 듣고 믿었다면 이 반짝이는 보석같은 지혜를 아무도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도 이상하다. 위대한 개종자인 바울조차도 그의 주님을 인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습관적으로 신적인 보증이 요구될 때마다 구약성서로 그의 눈을 돌리고 있다!


임계질량의 미달

만일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살과 피를 가진 창시자를 고집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그 어떤 중요한 일도 하지 않았고 그 어떤 중요한 말도 하지 않은 하나의 예수는 종교 혁명의 촉매가 될수 없다.

존재감이 없는 예수는 그가 아무리 재능있는 목수라 하더라도 간단히, 천년은 아니더라도, 수세기를 지배해 온, 신앙체계를 뒤엎을 만한 영감을 줄 수 없다. 최소주의적인 예수(사실상 이 이름을 가진 사람은 수백명에 달한다)만으로는 종교의 대해적(大海的) 변화를 설명할 수 없게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른 곳을 찾아 보게 된다.

진실은 기독교가 신으로부터 생성된 것도 아니고, 인간으로부터 생성된 것도 아닌, 이미 일어났던 일들로 부터 생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인간 예수는 인간 호루스, 디오니소스, 미트라스, 아티스 등, 그 어느 것 이상으로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다. 우리가 이 인간 형태의 수퍼스타 없이 기독교의 출현을 설명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기독교는 다른 모든 종교운동과 마찬가지로, 신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태어났고 점성술, 이교도의 구원자 종파, 희랍식의 영웅숭배 사상, 그리고 제국의 종파 자체, 등등을 포함한 많은 흐름들이 이 신화에 자양분을 공급했다. 이런 신화들은 정확히 “예수의 시대”에 만들어 져서, 그들 자신들의 구원자(Divus Iulius)와 ,그들 자신들의 태양의 아들 복음서(Res Gestae Divi Augusti), 그들 자신들의 성직자를 갖추고, 그들 자신들의 성전들을 후에 기독교의 출현을 목격하게 될 바로 그 도시 중심가에 세웠다. 다양한 경쟁자로부터의 (각양각색의) 구체화(具體化)속에서 기독교 운동은 약 2세기 동안 쇠퇴해 갔다. 내전(內戰)의 덕분에 이들은 대단한 호기를 만났고 마침내 이전에 지나간 모든 것들의 승합마차 편으로, 고대 종교 혼합주의의 궁극적 산물(産物)로서 마지막 승리를 쟁취한다.

Ken Humphreys

May 2010

켄 험프리스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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