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마리아, 마리아

신비에 싸인 처녀 엄마

무염사기(無染邪欺)

Jesus Never Existed –  Imaginary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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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eth Humphreys

 


17.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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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시스(Isis) –신의 어머니

어린이를 안고 있는 아이시스(Isis) 여신-신모(神母)의 원형

 

 

 

어머니와 아이, 로마 스타일

마그나 마터 Magna Mater (Ostia, Rome).

시빌(Cybele) 여신, 어린이 아티스(Attis)와 함께한 위대한 어머니

아티스는 자신을 거세하고 피를 흘리고 죽었다. 그리고 3일 후 나무로 부활했다. 그래서 봄의 번식의 축제가 생겼다.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

 

 

 



베스타(Vesta)- 로마의 방어자 여신

'고대의 신이며 로마와 그 통치지들의 영원한 수호신으로서 베스타(Vesta)는 이 위험한 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 숭배되고 있다.
– 그란트
Michael Grant, The Climax of Rome, p168.

 

 

 

 

이이시스(Isis)가 기독교도가 되다!

“마돈나와 어린이” 콥틱 스타일, Fayum, 에집트

 

 

 

 

그게 여기 였던가? (희립 전통)

나라렛에 있는 마리아의 우물

 

아니면 여기 였던가?
(카톨릭 전통)


나사렛에 있는 마리아 석굴(그로토)


천사 가브리엘의 “성 수태 고지”가 어디였나에 대해 약간의 혼란이 있는 듯.

 

 

 

 

 

 

에베소에 있는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살던 집?

마리아는 에베소 근처의 산 꼭대기에 집을 가지고 있었다?!

명백히, 이 집은 사도 요한이 지었다. 참 대단한 어부다.

 

 

예루살렘에 있는 마리아의 묘지?

교회건물의 기초는 그 연대가 5세기로 추정된다. 그렇지만 프란시스칸 성직자인 바가티 Bagatti (Nazareth) 을 보시라)는 (이 지역이) 1세기의 공동묘지라는 증거를 찾았다고 주장한다. 그가 그랬을 것이라고 내기를 걸어도 될것이다.

 

 

마리아의 또 다른 납골당??

이 여자가 언제나 그녀의 마지막 휴식처를 찾을 수 있을까?
도미숀(Dormition) 수도원 지하의 납골당

 

 

 

 

 

처녀 여왕

참으로, 처녀교(敎)가 절정에 이른 것은 이차대전 후이다.

1950년에는 마리아의 육신도 승천했다는 것이 캐톨릭의 공식 교리가 되었다; 1945년 파어스 12세 교황은 마리아를 여왕으로 선포했다. 반면 1964년에 제2 바티칸 공의회가 시작된 후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로…

이 모든 일들은 가부장적 문화에서 여성의 역활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 햄프슨 D. Hampson, After Christianity, p175/6.

 

 

 

 

 

"Our Lady of Guadeloupe"



얼마나 대단한 처녀인가! 마리아는 살인을 일삼는 정복자를 돕기위해 참으로 편리하게도 1531년에 나타난다.

”그녀는 교회가 신세계(新世界)의 원주민들에게 별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한 순간에 후안 디고라는 촌부에게 나타났다”
– 바게시
Roy A. Varghese (God Sent, p44)

아 적시출현(適時出現) 유령은-폭력적 테러리즘에 대한 훌륭한 대응책으로서- 800만의 아즈텍인들을 개종시켰다.

 

 

대모(大母)

왜소한 그리스도 위에 군림하고 있는 거대한 마라아상-(17세기, 페루)

 

 

 

 

하잇 마리아!

“천사에 대한 경례” (“아베 마리아”, 혹은 마리아를 위한 기도)는 12세기에 처음으로 유행하기 시작 했다.

 

수녀들이 코로아티아 나치들의 뒤를 따라 행진하고 있다(마리아에 의해 고무되었나?)

 

 

 

 

 

*Song of Hannah

"And Hannah prayed, and said, My heart rejoiceth in the Lord, mine horn is exalted in the Lord: my mouth is enlarged over mine enemies; because I rejoice in thy salvation. There is none holy as the Lord ...

The bows of the mighty men are broken, and they that stumbled are girded with strength ... they that were hungry ceased: so that the barren hath born seven; and she that hath many children is waxed feeble.

The Lord maketh poor, and maketh rich: he bringeth low, and lifteth up.
He raiseth up the poor out of the dust ...

The adversaries of the Lord shall be broken to pieces ."

(1 Samuel 2.1,10)

 

 

 

 

 

 

 

 

그림자에 불과한 존재로부터 천상의 여왕이 되기까지

누구?

성경은 예수의 개인적 신상에 대해서 거의 말해주는 것이 없다; 그의 어머니로 알려진 사람의 신상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매우 초기의 기독교도인들에게 ‘예수의 어머니’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신인(神人)의 탄생 이야기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다.-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죽은 후의 거듭남, 즉 부활이었다. 바울은 마리아 (혹은 요셉)에 대하여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복음서에서의 마리아는 -천상의 여왕이요 가장 중요한 성자로 등극할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지만- 그림자 같은 존재에 불과하고 2차원적인 무존재의 존재였다.

복음서의 이야기 속에서 ‘마리아’는 여러 장면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 모든 장면에서 그녀는 수동적인 존재일 뿐이다. 다만 장면의 배경이 되었을 뿐이고 아무런 발언도 하지 않는다.(그녀는 통 털어서 세번 발언하고 있다. 그 중 두번은 한 문장에 불과하다) 그녀의 개인적 면면에 대한 기술은 없다.(사실 성경은 등장 인물 모두 자세한 신상정보를 밝히지 않고 있다). 그녀의 나이도 모른다. 그녀의 역할은 약소한데 주로 증인 역활을 한다. 우리는 그녀가 엘리사벳의 사촌이요 요셉의 약혼자 였다는 것 외에는 그녀의 근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 (성경에서) 그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소위 ‘성 수태 고지(聖受胎告指)’였다. 이 장면에서는 천사가 그녀의 장래 경력을 지정해 준다. 별 소란 떠는 일 없이 그녀는 그녀에게 계시된 이 ‘축복’받은 역활을 승락하고 산으로 달려가 임신한 엘리사벳(세례 요한의 어머니가 될 여자)과 더불어 산에서 석달을 지낸다. 여기 그녀에게 부과된 가장 중요한 장면에서 그녀는 소위 마니피캇('Magnificat')으로 알려진 일장연설(이런 대단한 순간에 이런 명료한 연설이라니 놀랍다!)을 한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 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능하신 이가 큰일을 내개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 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공수로 보내셨도다.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이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하리로다.
(누가 복음 1장 46절-55절)


당시 그 방에 (아니면 동굴이었나?) 누가 같이 있었기에 이 모든 일들을 기록할 수 있었는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다. 아마도 그녀가 회고록을 썼던 모양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이 연설문은 사무엘 상 2장에 나오는 한나의 노래를 각색한 것이 명백하다) 그러나 이 독백을 마친 후 마리아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목동과 현자(동방박사)들의 방문을 목격한 증인이었고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지키어 생각했다” (누가복음 2장 16절-19절); (요셉은) 그녀를 에집트에 데려갔고(마태복음 2장 13절-18절) 다시 갈릴리로 데려왔다; 그녀는 그녀의 열두살 배기가 자신의 메시아 됨을 선포했을 때 깨닫지 못했고 (누가복음 2장 48절-52절); 물로 포도주를 만든 것을 목격한 증인이 되었다(요한 복음 2장 1정-12절); 그녀는 자신의 수퍼스타 아들로부터 거부되었고 (누가복음 8장 19절-21절); 십자가 처형을 목격한 증인이 되었다 (요한복음 19장 25절-27절); 그리고 그녀는 성령을 기다렸다 .(사도행전 1장 14절). 그녀의 궁극적 운명은 밝혀진 바 없다. 그리고 그녀는 기독교 교회의 창설에 어떤 역활을 했다는 그 어떤 공적도 인정받지 못했다.

 

이교도적 모델

이 개략적인 밑그림만 가지고도 창작력이 풍부한 기독교 성서 필자들은 곧바로 총체적 인물상을 창조해 낸다. 이교도 신들은 흔히 –햇빛으로 임신이 된 결과로-처녀신으로부터 태어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 결과로 태어난 태양신은 그의 어머니 젖가슴에 안겨있는 어린애로 묘사된다.- 다름 아닌 ‘마돈나와 아이’다. 이런 종류의 성화(聖畵)는 에집트로부터 중국까지 널리 발견된다. 로마의 처녀신 베스타(Vesta)는 이 여신의 꺼지지 않는 불꽃을 지켜 가고 그들 자신의 순결을 30년 동안 간직한 여인들에 의해서 받들어 모셔졌다.

기독교의 ‘마리아’는 신의 어머니인 동시에 그녀의 처녀성을 2000년동안 지키는 이중 가격(加擊)에 힘입어 (이교의 여신에 비해) 현저하게 높은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이렇게 되는 데에는 이교 신화에 (등장하는) 모든 소소한 소품들과 소 주제들을 기독교적인 것으로 융합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수세기에 걸친 창조적 ‘이야기 하기’가 필요했다.

화려한 초특급 영웅 자신의 ‘발명된 생애’ 에 대한 뒤늦은 메아리와도 같이 마리아의 전기(傳記)는 여러 세기를 거치면서 꽃이 피워졌다. 저스틴(Justin)이나 이레나이우스(Irenaeus) 같은 초기 기독교 저술가들은 마리아를 ‘제2의 이브’로 추켜 올렸다. 그녀의 ‘복종’이 (에덴)동산의 원래 거주자가 지은 죄를 돌려놓았다는 것이다.

‘순교자’ 저스틴은 팔레스타인 출신 희랍인으로 바 코치바(Bar Kochbar) 반란 당시 에베소로 도망을 쳤다. 그는 이 도시에서 발견한 태아기적 기독교를 매우 흥미있게 받아들였다. 그렇지만 저스틴이 이 새 종교에 심취하게 된 데에는 그가 이미 습득하고 있던 희랍 고전에 대한 상당한 교양이 큰 영향을 주었다. 그가 새롭게 정착한 도시에서, 유서깊은 이교(異敎)의 숭배 대상인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 로마에서는 다이아나로 불리는)는 수천년 동안 젊음과 정숙함, 그리고 생식력에 대한 영원한 보호자 처녀였다 이런 과정에서 이 도시는 부유한 순례자의 도시가 되었다. 세계 최초의 은행가는 아르테미스 신전의 성직자였다.

 

처녀가 되다

저스틴은 경쟁적 이교(異敎)의 여러 양상(樣像)들을 그의 기독교에 주입시키는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 이미 확립되어 있는 기독교도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저스틴은 ‘처녀잉태 사상’을 도입하여 매우 빈약한 성경속의 마리아 이야기를 꾸며대려고 고집스럽게 애를 썼다. 이 믿음은 저스틴 자신도 인정했듯이, 오로지 한 축복받은 예언자의 예언에 기초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바로 오역으로 악명 높은 70인역(Septuagint)의 이사야 7장 14절에 근거했다는 것이다.(히브리어의 이사야서가 희랍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원래의 “젊은 여자”란 말이 “처녀”로 오역되었다) 이제 막 기지개를 펴고 있는 기독교가 장구한 기간동안 성숙해 온 고대 신앙과 경쟁한다는 맥락에서 보면 기독교 추종자들이 결국은 처녀탄생설에 정착했다는 사실은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이 기적같은 도착(즉 탄생)은 초기 기독교 비판자들에게 편리한 반박의 빌미를 제공해 주고 있다. 이들은 만일 예수가 실제로 존재 했었다면 상당히 근본이 의심스러운 부모의 소생이었을 것이라고 시사한다.

마리아의 전통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그 다음의 주요 공헌은 2세기 중반에 소위 ‘Protevangelium of James’ (야고보의 이름을 딴 복음서로 145년경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된다:역자 주)라 부르는 문서에서 나왔다. 이 문서는 너무도 명백한 허구로 판명되어 르네상스 이후에는 캐톨릭 교회에서 조차도 거부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건한 허튼 수작’은 이 축복받은 처녀에 대한 대부분의 현대적 신앙태도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이 ‘야보고 복음’은 마리아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이름 같은 개인 신상 정보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신동아들 (즉 예수)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 (예를 들면 세살 때 부터 유대 신전에 맡겨졌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는 유대 관습에 전례없는 일이다); 마리아의 때 이른 순결 맹서 (왜? 그녀는 앞으로 닥칠 일을 몰랐었나?); 매일 같은 천사와의 대화; 그리고 사춘기 때 늙은 홀아비 요셉과의 안전한 결혼,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꾸며진 ‘역사’에 힘입어 마리아는 그녀의 ‘겸허한 여성적 성품’으로 그리스도보다도 오히려 더 다가가기 쉬운 중재자로 그녀의 (신분)상승을 시작한다. 그녀를 대상으로한 예술작품둘이 우후죽순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괴기하게도 그들이 근거로 삼은 원형은 아르테미스 여신이었다.-마리아 이전 수천년에 걸친 시장활동(마켓팅)을 통해서 성공을 이룬 여신, 바로 그 여신이었다.

한 세기 후에 ‘마리아 탄생 복음’ (‘Gospel of the Nativity of Mary’ )(우리는 충분한 숫자의 복음서를 결코 가질 수 없겠죠? 그렇죠)이 나타나 자세한 배경을 추가한다. 이 고대(古代) 부모인 안네(Anne)과 요아킴(Joachim)에게 태어난 마리아의 탄생이야기는 간단히 말해서 한나와 엘가나 사이에서 태어난 사무엘 탄생 이야기를 각색한 것으로 이미 사무엘 상권에서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마리아의 할머니가 일곱 번 결혼했다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성교 중 느낀 관능적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서 주님은 여섯명의 남편을 파견한다. 다행히도 일곱 번째는 이 죄스러운 행위 중 발기를 못했다는데 (아마도 비아그라를 복용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역자 주) 혹시 우리는 안네, 마라아, 예수,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난 모든 이야기들을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처녀성을 간직하다

복음서는 예수가 4명의 형제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2명의 자매가 있었다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신학자들은 그들의 여신이 처녀의 ‘순결성’을 결코 손상시킨 일이 없다는 논리를 고집하기로 작정한다: 그들은 마리아가 이 모든 분만과정을 거치고도 처녀로 남아 있었다고 우기고 있다.

“4세기에는 마리아의 처녀막은 예수의 분만 후에도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는 생각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마리아의 무통 분만(Mary's in partu virginity, 즉 아이를 낳고도 처녀성이 유지 되었다는 억지. 차라리 배꼽으로 예수를 낳았다고 했으면 더 쉬웠을 것이다: 역자 주)은 당시의 대부븐의 저명한 신학자들이 제기한 중요한 논제였다.”
– 햄슨 (D. Hampson, After Christianity, p189.


마리아의 ‘영원한 처녀성’을 주장하는 교리가 널리 퍼지게 되자 예수의 형제로 상정되었던 인물들에 대하여 신학자들간에 혼란 또한 널리 퍼졌다. 그들은 이 새로운 교리를 조화시키지 않은면 안되게 되었다. 그래서 형제와 자매는 사촌으로 혹은 이복형제 등등으로 둔갑한다.

4세기는 특히 마리아 교(敎)가 번성하기에는 절호의 기간이었다. 이는 대부분 헬레나 여제의 순회활동에 힘입은 바가 크다. 콘스탄틴 황제의 모친으로서 그녀는 아마도 세계적 주님의 원(源) 모친에 특별한 동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헬레나는 실질적으로 ‘교회 고고학’을 발명한 사람이다. (아니면 적어도 성지(聖地) 개발 산업을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일 수도 있다)

성지에서 그녀는 가는 곳마다 그리스도의 ‘증거’를 발견하고 바로 그 자리에 교회 건축을 명령했다: 예수가 탄생했다는 동굴(그 동네 사람들이 주장하듯), 마지막 저녁식사를 했다는 집(그 동네 사람들의 말 대로라면), 게세마네 동산, 십자가 처형 언덕, 빈 무덤, 십자가 그 자체, 그리고 목재를 얻기 위해 잘라 냈던 바로 그 나무들 모두! 그리고 정말로 확신이 가도록, 헬레나는 나사렛에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성 수태 고지’를 했다는 바로 그 장소를 ‘발견’한다. 다른 모든 성물(聖物)들과 마찬가지로 이곳은 그 후부터 황실 후원의 수혜자가 되었고 수지 맞는 순례지가 되었다. 이 성물과 함께 마리아 축제, ‘성 수태 고지’가 열린다. 예수가 주로 그의 목회활동을 했다는 가버나움시(市)에게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지만 헬레나는 그 멀리까지는 가지 않았고 이 도시는 역사에서 잊혀졌다.

 

무염사기(無染邪欺)

5세기 에베소 회의(Council of Ephesus ,431년)에서는 마리아에게 ‘신의 어머니’란 뜻의‘Theotokos’ 라는 직함이 헌정되었다.

“기독교적 이단신학에 대항하는 가장 확실한 벙법은 마리아를Theotokos로서 확언하고 숭상하는 것이다”
– 바게시 Varghese, God Sent, p43.


다시 말하면, (도대체) 이 성스러운 목수가 어느 만큼 사람이었고 어느 만큼 신이었는지에 대하여 계속되고 있는 심사숙고를 중지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신이었고, 말할 것도 없이 삼위일체의 한 부분이며, 마리아는 그의 어머니다. 끝.



‘삼위일체’가 ‘천상의 여왕’ 마리아에게 왕관을 씌워주고 있다.

(도대체)신이 몇이나 되나?

에베소(라는 도시)는, 물론, 죽고 부활한 아티스(Attis)란 신의 어머니요 배우자인 시빌(Cybele)이란 신을 오랫동안 섬겨오기는 했지만, ‘신의 어머니’의 본거지였다. 이 프리지아 신인 시빌 Phrygian Cybele 은 로마 시대에 희랍신인 아르테미스(Artemis)와 융합된다. 약간의 신성모독과 재건과정을 거친 후 이 신성(神聖) 사업은 평상을 되찾는다.

비잔틴 문명아래의 로마시대에서는 왕실 예식과, 왕위의 표상, 그리고 왕관은 물론 홀(笏) 까지 갖춘, 그림자 같이 존재 없던 촌여자라기 보다는 제왕의 기호를 유발할 그런 여왕으로서의 마리아가 특별히 선호되었다. 예수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녀는 제왕의 반열에 올랐고 성녀로 격상되었다. 6세기의 콘스탄티노풀 회의 (Council of Constantinople (553 AD))에서는 마라아가 영원한 처녀라는 교리가 정식으로 승인 되었다. 처녀의 ‘순수성’이 신의 ‘순수성’에 근접해 보인다.

 

두번의 죽음을 맛보다

처음 400년간의 기독교도 증언록에서는 이 축복받은 처녀의 최후에 대하여는 매우 잠잠했다. 그러나 에베소 회의 후에는 한 전통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 전통에 따르면 십자가 위에서 예수가 내린 명령에 따라 사도 요한이 마라아를 에베소로 모셔왔다는 것이다.-놀랍고도 놀랍도다!-그래서 그녀가 여생을 보낼 집을 지어주었다는 것이다. 신께 영광 있으라, 당신은 지금도 그 집을 방문해 볼 수 있다!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 요한 복음( 19장 26절, 27절)


그러는 동안, 마리아의 죽음을 둘러싸고 예루살렘으로부터 다른 경쟁적 ‘전통’이 싹트고 있었다. 여기서 그들은 그 증거로 올리브산 자락의 기드론(Kidron) 계곡에 자리잡고 있는 빈 무덤을 증거로 내세우고 있다. 여기는 순례자에게도 편리한 지역이란다. 20세기 초에 이 도시 건너편 카이저(Kaiser) 부근에 엄청나게 지어진 도미니숀 수도원(Abbey of the Dormition)에서는 이런 주장을 반박한다. 여기서도 초기 순례자들이 이 곳을 마리아가 잠자던 곳으로 간주해 온 ‘전통’이 있다는 것이다.

7세기에 이르러서는, 창작력이 풍부한 작가들이 마리아 이야기 중에서 절름발이 같이 맞지 않는 끝 부분을 좀 더 만족할 만한 이야기로 교체하기에 이른다. 요한 다마신(John Damascene) (Gregory of Tours와 함께)은 그녀의 육적 신체(그녀의 영적 신체뿐 아니라)가 천상에 인수되었다 (다시 한번, 그녀의 이름난 아들의 경력과 나란하게)는 사상을 개발한다. 요한은 다마스커스(Umayyad, Damascus는 당시 수도)에서 살았고 당시 발흥하고 있던 이슬람교에서 모하메드가 620년 경에 승천되었다는 주장을 한 데에서 영감을 얻었을 지도 모른다. .

성모 몽소승천(蒙召昇天)의 교리는 최근 1950년도에 이르기 까지 교황 파이어스 12세에 의해서 카톨릭 교리로 정의되어 있었다. 그의 ( Munificentissimus Deus, 최대로 관대한 신 이라는 뜻:역자 주)이라고 하는 사도 헌장 에서 교황은 마리아의 실제 죽음에 대한 의문의 문을 열어 놓았다. 그 결과 캐톨릭은 마리아가 실제로 죽기 전에 승천했는지, 또 만일 그렇다면, 그녀의 영혼이 그녀의 육체보다 사흘 앞서서 승천이 되었는지에 대해 이견을 갖게 되었다. 희랍정교에서는 이 터무니 없는 사건에 도미숀(Dormition)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오르고 또 오르면…

787년에 고위 성직자들과 감독들이 다시 나시아(Nicaea)에 모였다. 마리아의 게속적인 신분상승이 다시 한번 의제가 되었다. 이 세기의 초기에 들어와, 이슬람교로부터 지속적인 압력을 받은 두명의 황제, 레오 3세(Leo III (717 - 741))와, 그의 아들 콘스탄틴 5세(Constantine V (741 - 775))는 우상숭배와 과다한 성상(聖像)들을 불법화 했다. 그러나 그들의 우상타파 정책은 수백군데가 넘는 수도원과 성지에서 벌어드리는 수입원을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그래서 희랍 정교 교회와 황실간의 사이가 틀어지게 되었다. 자신의 어린 아들 콘스탄틴 6세를 대신해 섭정을 하던 여제 아이린(Irene)은 결국 교회측의 압력에 굴복하여 제 7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이 공의회는 우상, 특히 마리아 숭배를 용인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승인하였다.

주님과 사도들과 그리고 선지자들은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모든 천상의 권능 위에 게시는 성모를 숭상하도록 가르쳤다. 만일 거룩한,영원한 처녀 마라아, 진정으로 참된 성모가, 보이던 보이지 않던 모든 피조물들보다 높은 곳에 게시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그녀로 부터 태어난 우리의 신에 대한 강력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신실한 믿음으로 그녀의 중재를 탄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파문을 당해야 할 것이다.
–  바게시  Varghese, God Sent, p16.


9세기에 이르러서 마라아는 신인(神人)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가릴 만큼 커졌다 -그리고 마리아는 교회 성직자 계급 조직에서 그녀가 있어주기를 바라는 그 어떤 자리에도 있을 수 있게 되었다.

 

원죄를 제거하다

마리아 탄생에 대한 초기 저술들에서는 마리아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더 ‘순결’한 존재가 아니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원죄가 성교에 의해서 이전된다는 것을 안다). 모든 초기의 교부들은 오직 그리스도 홀로 죄 없이 태어났다는 것에 동의했다. 그들에게는 마리아가 죄인이었다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지만 마리아의 자궁이 태아로서 성장중인 우리 초특급 영웅의 임시 거처였기 때문에 이 더럽혀진 자궁은 순결성에 대하여 신학적인 어려움을 제기하게 되었다-만일, 즉, 우리가 그런 일들에 대하여 생각하기를 멈춘다면 모르겠지만.

7세기에 일어나기 시작한 이슬람교는 “선지자 예수”, 마리아, 그리고 그녀의 처녀성을 즐거운 마음으로 채택하였고 황당한 전설의 창조에 자신들의 공헌을 더하기 시작한다. 마호메드의 전통에 따르면 모든 신생아들은 사탄의 손길을 탄다. 그러나 마리아와 그녀의 대단한 아들에 대하여는 신이 방어망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예수만이 아니라) 마리아도 원죄가 없이 태어났다는 개념은 다시 캐톨릭으로 스며들어 갔다. 기본(Edward Gibbon)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라틴 교회는 처녀 엄마에 대한 순결성의 개념을 코란으로부터 빌려오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이것은 코란에는 넌즈시 암시되어 있고 “Sonnites”의 전통에 의해 더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다. 12세기에 버나드 성인(St Bernard)은 무염시태(無染始胎)를 주제넘은 진기함으로 비난했다.


13세기에 격심한 교리 논쟁은 도미니칸 (유염시태)과 프란시스칸(무염시태)사이의 싸움을 유도했다. 이 쟁점은 19세기에 독재적인 파이어스 9세 교황(Pius IX)이 ‘무염시태’의 교리를 그의 교황 무오류설을 향한 움직임의 첫수로 들고 나올 때까지는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했다.

1854년이 되어서야 마리아가 ‘정상적으로 임신했지만 원죄는 없다’는 것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전까지는 제롬(Jerome)과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4세기에 개발한 ‘영구적 처녀’라는 허황된 생각이 마리아의 순결성을 주는 데 충분하였다.

이미 여신이 되어 있었으니 ‘마리아’식 기적의 출현이 전 중세시대를 통하여 풍토병처럼 번졌다는 것은 그리 놀랄일이 아니다.(그리고 이는 현재 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신 자신보다는 작지만 인간보다는 훨씬 큰, 무한대의 겸허함을 가진 축복받은 여성으로서 그녀는 보잘것 없는 민초도 덜 중요한 문제를 가지고 탄원할 수 있는 중재자로 간주되어 왔다. 그녀는, 간단히 말하여, 지상에 살았던 가장 중요한 여인이었다.

마리아 여신교(女神敎)는 중단시킬 수 없었다. 대부분의 성인(聖人)들을 위해서는 단 하루의 휴일이나 축제를 가지지만 이 성모는 몇 주일마다 한번씩 그녀를 위한 날들이 있고 기독교 세계의 모든 교회에 그녀의 예배당이 있다. 결국 캐톨릭 교회 조차도 신자들에게 마리아는 아들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존재로 보도록 환기시킴으로서 이 다름질치는 환상을 중단하도록 요구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의 개신교도들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지나친 일이었다. 그들의 손에서 마리아는 다시 한번 배경의 어떤 곳에서 수동적이고 복종하는 그림자 같은 존재로 축소되었다.

처녀성에 의하여 정의되고 그녀의 무한한 겸허와 복종으로 찬미되는 그녀는 여성혐오적 광신자들에게는 이상형의 여성이며, 그녀 자신의 말대로, 주님의 손시중이나 드는 여자(즉 노예)이다.

 

성스러운UFO!

천상과 지구간의 정기 샤틀운행 사업을 시작한 마리아


이 천상의 여왕은 기회있을 때마다 그녀의 형제들을 돕기 위하여 그녀의 모습을 나타내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이미 4세기에 그녀는 리베리우스(Liberius) 교황 앞에 나타나 “무자녀 부부들은 그들의 유산을 교회에 헌납하라”는 메세지를 전한다. 참 편리하기도 하다.

11세기 영국에서 그녀는 한 독실한 색슨 귀족부인( Lady Richeldis de Faverches) 을 나사렛으로 방사(beamed to, 스타트렉을 연상해 보시라: 역자 주)해 보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 귀족부인은 (노훡크 지방의) 월싱햄(Walsingham)에 (나사렛에 있는) “예수의 집”의 복사판을 건축한다. 헨리 8세가 이곳을 폐쇄하기 전까지 이곳은 전 유럽으로부터 내왕한 순례자들의 지갑을 털어왔다.

"Our Lady of Guadeloupe"로서 그녀는 서반아인들이 (남)미 대륙을 정복하도록 돕는다 (이 과정에서 토착민들이 피를 강같이 흘렸다는 사실은 상관 마시라. 다만 이들이 입고 있던 망또가 얼마나 멋진지만 보시라)

현대의 유령들은 불란서의 찰스10세가 걷던 길을 따라 갔다. 이 찰스 10세란 사람은 불란서 혁명의 결과로 추락된 교회의 권위를 회복시키려 시도했던 사람이다. 1830년 파리에서는 순진한(실상은 멍청한)사람들을 대상으로 마리아의 ‘기적의 메달 ‘ 수백만개를 팔아 먹었다. 불란서의 성숙해 가는 이성주의로 부터의 도전에 대응하여 마리아는 다시 솟아나고 또 다시 솟아 올랐다: 1846년에는La Salette 에서, 1858년에는Lourdes 에서, 그리고 1971년에는Pontmain 에서. 신(新)세기에 접어들자 그녀는 폴투갈로 방향을 틀고 다시 벨지움으로 향한다.

얼마나 대단한 처녀인가! 유럽에서는 옛 제국들이 쓰러져 가고 혁명이 러시아를 뒤흔들어 놓고 있을 때 마리아는 폴투갈에 나타나 태양이 흔들리게 했다!



믿거나 말거나 그녀는 최근 그녀의 시간을 보스니아에 투입했다. (아마도 유엔 평화 사절단으로?) 여기서,

“불신자를 개종시킨다는 면에서 마리아는 Guadeloupe 을 제외한 역사상 그 어느 유령보다 더 큰 영향을 끼쳐왔다.” –바게시

 

사진기 앞에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처녀와 어린이, 1989년 9월 3일 카라손드(Karacsond), 항가리.

매일 나타나는 영상, 디즈니 월드, 풀로리다.

 

 

축복받은 처녀 마리아-전천후 성녀

‘성모 유령’은 로마 교회를 위한 효과적인 돈벌이 수단으로 판명되고 있다. 이는 ‘성령’ (형상화 하기에 약간 힘든) 보다 더 잘 손에 잡히고 전능하신 그리스도 보다 더 접근이 용이하다.

카톨릭교주의를 4세기로 돌리기 위한 목적으로 ‘성녀’를 납치함으로서 교황의 대리인들은 이 ‘축복받은 처녀’를 말 잘 듣는 캐톨릭의 정책수단으로 형성해 왔다. 마라아는 과거에도, 그리고 현재에도, 카톨릭 성직계급조직에서 ‘복음’으로 남아 있다. 그녀는 편리하고, 적응력 있고, 교회 정책의 주역이며, 우주의 물리법칙으로부터 뿐만 아니라 복음서의 가르침에서 유래하는 구속으로부터도 자유롭다.

지방 성자가 부족함이나 곤경에 처했을 때마다 우리는 믿는 이들을 격려하고 불신자들을 (머쓱하게)굳어지게 하는 이 ‘지극히 관대한 성처녀 마리아’(BVM)의 ‘적시출현(適時出現) 유령’에 의존할 수 있다.

얼마나 대단한 처녀인가!

 

Sources:
Graham Phillips, The Marian Conspiracy (Sidgwick & Jackson, 2000)
Marina Warner, Alone of All Her Sex (Picador, 1976)
John Shelby Spong, Liberating the Gospels (Harper, 1996)
John Shelby Spong, Born of a Woman (Harper, 1992)
Robin Lane Fox, The Unauthorized Version (Penguin, 1991)
Leslie Houlden (Ed.), Judaism & Christianity (Routledge, 1988)
W.H.C. Frend, The Rise of Christianity (Darton, Longman & Todd, 1984)
Riane Eisle, The Chalice & the Blade (Harper Collins, 1987)
Ruth Harris, Lourdes: Body & Spirit in the Secular Age (Allen Lane, 19990
Roy A. Varghese, God Sent - A History of the Accredited Apparitions of Mary (Crossroad,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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