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두 사도.-

날조된 구원자의 날조된 추종자들

Jesus Never Existed –  Imaginary Fri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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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nneth Humphreys

 


21.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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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시간

테툴리안( Tertullian)과 클레멘스( Clemens of Alexandria [late 2nd - early 3rd centuries])시대에는 순교의 영광이 성 베드로, 성 바울, 그리고 성 야고보로 국한되었었다.

그 후 더 먾은 희랍인(저자)들이 점차로 나머지 사도들에게도 이 영광을 수여해 갔다. 이들은 사려깊게도 이들의 설교와 고난의 활동무대를 로마 제국의 경계지역 밖으로 택했다.

– 기본 Gibbon (Decline & Fall, 15)

 

 

 

 

공상 소설 공장

이 후 시대에서 (수도원이라는)고독한 환경에서 크게 할일 없는 승려들이 지극히 원시적인 순교의 고통과 죽음을 좀 더 다양화하는 데에 자신들의 시간을 보냈다. 이들은 흔히 훨씬 세련되고 교묘한 수법의 고문 방법을 고안해 냈다.

– 기본Gibbon (Decline & Fall, 15)

 

 

 

 

죽음 보다도 못한 운명

죽음을 멸시할 준비가 되어있는 경건한 여성들은 더욱 심한 재판에 회부되었고 그들이 그들의 종교나 순결에 더 높은 가치를 두는지를 결정하도록 요구되었다고 전해진다.

계절에 따라 (적정한) 개입을 함으로서 어떤 신비한 권능은 비 자발적인 패배로 인한 불명예로 부터라도 순결한 그리스도의 배우자들을 보호하였다.

– 기본 Gibbon (Decline & Fall, 15)

 

 

 

 

얼간이 짓

성 아가타 (Agatha)
 
시실리의 부유한 처녀 아가타는 그녀의 순결을 그리스도에게 맹세하였다. 그러나 비열한 로마 집정관 퀸티니안(Quintinian)은 그녀의 덕(德)에 대해 (그만의) 계획이 있었다.

심술 맞게도 그는 아가타를 아포로디시아(Aphrodisia)가 운영하는 사창가에 넣었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녀는 그녀의 순결을 지켜냈다.

화가 치민 퀸티니안은 아가타를 고문하고, 채찍질하고 그녀의 유방을 잘라버렸다. 그러나 이는 성 베드로의 환상에 의해 기적적으로 회복된다.

단호한 집정관은 아가타를 벌거 벗긴채로 깨진 옹기 조각들이 섞여 있는 벌겋게 불이 지펴 있는 석탄위로 굴려버린다.

아가타는 감옥에서 죽었다. 그리고 그녀는 말뚝에 묶여있는 채로 태워졌다. 그녀의 몸에 불이 붙지 않자 그녀의 목이 잘려졌다.

어이쿠, 기독교 스타일 성 폭력?!

 

 

 

 

 

예수는 (이런 경우)무엇을 할까?

“제롬은 은둔자 바울에 대한 전설에서, 벌거 벗긴 채 사슬에 묶여 꽃침대에 뉘어져 있는 상태에서 아주 예쁘고 음탕한 창부둘의 공격을 받게되는 젊은이에 대한 요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끓어 오르는 욕정을 참기 위해 자신의 혀를 물어 잘라버린다”

– 기본 Gibbon (Decline & Fall, 15)

 

 

 

 

 

광신자의 정신상태

성 이그나티우스?

이사람은 자신이 그 위에서 죽어갈 사형틀에 조금 과도한 관심을 보였던 모양인가?

“불과 교수대와 사나운 짐승, 부러진 뼈, 조각조각난 신체부분들, 온 몸이 멍든 신체, 악마의 고문과 지옥 그 자체가 나에게 닥치게 하라. 그래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도록” (이 사람은 정신 감정을 받아 보아야 할 듯: 역자 주)

–훳스의 순교자 이야기 Foxe's Book of Martyrs, 1968

이그나티우스는 115년 그가 순교를 당하기 위해 로마로 향하는 도중 폴리캅에게 자신의 이 적나나한 충동을 편지로 전했다고 한다.

 

 

 

 

 

얼마나 키가 크길래?

“클레멘틴스(Clementines)는 에비오나이트(Ebionites, 유대 기독교의 한 종파: 역자 주) 가 사용하던 그들의 경전 엘카사이(Elchasai 혹은 Helxai)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 내용은 서기 100년에 키가 96마일에 달하는 천사가 성인 일카사이에게 계시해 주었다고 전해온다.

– 카톨릭 백과사전 4권 (The Catholic Encyclopedia, IV.

 

 

 

 

사자 밥?

기독교인들이 격투기장에서 사자의 먹이로 던져졌다는 이야기는 17세기 이전에는 나오지 않는다. 이 이야기는 성 베드로 사원을 건축하는데 필요한 건축자재 조달을 위해 격투경기장들이 약탈되기 시작함과 동시에 나오기 시작했다.

 

 

(사도들은 어떻게, 그리고 왜 날조되었나)

(off site)

by Frank Zindler

 

 

 

 

 

그들의 선구자들이 그렇게 고난을 당했다는 것을 확신한 나머지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적대자들에 대하여 그런 야만적인 잔인성을부과했다는 사실만 없었다면 가학적 다양성을 너무나도 잘 보여준 야비한 극적장면들은 소름끼치게 재미있었을지도 모른다.

 

 

 

 

여자 사도?

“내 친척이요 나와 함께 갇혔던 안드로니고와 유니아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 또한 나보다 먼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라” –로마서 (16장 7절)

서기 200년의 파피루스 P46을 포함한 초기 문서들에서는 유니아의 여성형 이름 "Junia"가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자료에서는 첫 음절에 엑센트를 덛붙여 좀 더 수용 가능성이 있지만 매우 희귀한 남성형의 이름 "Junias"를 만들어 낸다!

 

 

 

 

신통력 없는 사도들

“저희가 무리에게 이르매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리어 가로되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저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
내가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하더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그를 이리로 데려오라 하시다. 이에 예수께서 꾸짓으시니 귀신이 나가고 아이가 그 때부터 나으니라.
이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는 어찌하여 쫒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가라사대 너희 믿음이 적은 연고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 마태복음 (17장14절-20절)

 

 

자, 단지 겨자씨 하나만큼의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데 왜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기적을 행하는 것을 (단 한번도) 볼 수 없을까?  (기적은 고사하고 저희들끼리 싸움질이나 안해도 좋겠다: 역자 주)

 

(예수의) 열두 사도들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람들 중의 열 두 사람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무엇 보다도) 이 사람들은 예수의 경이로운 (목회) 활동과 그의 장엄한 가르침, 그리고 복음을 세상 끝까지 전하기 위해 예수가 직접 뽑은 사람들로 알려져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놀라운 일은 우리가 그들 열 두 사람에 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 열두 사람의 이름 조차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복음서는 이들 열 두 제자에 대하여 20명이 넘는 이름을 나열하고 있다. –바돌로매란 이름은 어떤 곳에서는 나다니엘로 나오고, 마태는 레위로, 유다는 다대오(Thaddeus), 르배오, 혹은 다대오로(Daddaeus)!

너무도 명백한 것은 만일 이 열 두 사람들이 역사적 실존 인물들이었고 교회의 창립과 그 성장과정에서 그토록 중요한 역활을 했던 사람들이었다면 그들이 누구였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질문에 대하여 이처럼 극심한 혼란을 불러오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 중 그 어느 누구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 것이 없다.

 

“열 두 명의 선인(善人)들과 진실 ?”

사실을 말하자면,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초기의 정보원(源)인 복음서에서도 열 둘 중 일곱 사람에 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들은 단지 목록상에 나타나 있는 이름에 불과하다.

그런데 성령의 부움을 받아 병든 자를 치유하고 귀신을 몰아내는 권능을 부여받은 중요한 인물들이 아무런 저술도 남기지 않았고, 아니면 그들에 대한 아무런 기록조차 없다는 사실은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예수의 권능있는 (목회)활동들에 대한 목격자로서 택함을 받고도 아무런 목격담이나, 설교, 회고록, 편지, 가르침, 혹은 간결한 격려의 말 한마디, 등등 그 어느 것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도 이상하지 않은가?

우리가 이 “열 둘”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것은 다만 훨씬 후대로 부터 전래된 헷갈리는 전설과 허무맹랑한 이야기들로서 그들이 어디에 갔었고 무엇을 했으며, 그리고 특별히 그들이 어떻게 죽었는가에 대한 과장된 이야기들 뿐이다. 그들의 죽음은 아주 충실하게, 전율스러운 부분까지 세세히 기록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은 바로 이 적나나하게 표현되어 있는 사도들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 우리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이다. 우리 모두는 기독교 옹호론자들의 다음과 같은 주장을 듣는다: “그들이 거짓말을 위해서 죽었겠습니까? 이것만 보아도 예수이야기는 사실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설사 이 모든 이야기들이 허구라 하더라도, 순교자의 힘이 어떤 주의나 운동에 갖는 힘이 얼마나 큰가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예수의 이야기에서, 이 열 두 제자는 황도대(黃道帶)의 12궁도(宮圖)를 지나는 태양신의 측근을 모방하려는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허구이다. 다른 구원자 신과 마찬가지로 예수도 수행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진실은 이 열 두 제자 이야기가 다분히 지저분하고 야비한 발명품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도대체 이 이야기를 어디서 따 왔을까?

여호수아도 열 둘을 택했다.

"온 백성이 요단 건너기를 마치매 여호아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백성의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두 사람을 택하고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 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 하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예비한 그 열 두 사람을 불러서…."

– 여호수아 (4장. 1절-4절)


’예수’나 ‘여호수아’란 이름은 모두 히브리어 ’ Yehoshua – 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 이는 ‘야웨가 구원하신다’는 뜻을 가진 말로 가나안 정복당시 이스라엘 인들의 지도자에 주어진 영웅의 이름이다.

비슷한 점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마태복음의 예수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한다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 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마태복음 (19장 28절)

 

 

예수 운동에 바쳐진 순교자: 이 “고통받는 제자들”

“제자들이 날조된 구원자를 위해 고통 받고 죽어 갔을까?”


가독교계(界)의 누더기 같은 (사상)체계를 받혀주고 있는 지프라기 이엉들 중 하나가 주님 자신의 손으로 택한 원래(源來) 사도들이 당했다는 이른바 고통을 수반한 잔인스러운 죽음이다. 그들의 영웅적이며,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게하는 희생으로 이 저명인사들은 순교자의 왕관을 벌어 쓰고 천당에서 주님과 합류했다. 이런 행동으로 그들은 후세대의 숭고한 기독교인들에 영감을 주어왔다. 종국에 이들 숭고한 기독교인들은 피에 굶주린 로마인들에게 기독교적 가치와 동정심, 그리고 형재애를 가르쳤다. 에… 물론 그것은 전설일 뿐이다..

그 잔인성과 인간이 견뎌야 했던 고통들은 교회의 역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한 부분이지만 기독교 광신자들이 죄없는 희생자가 된 적은 거의 없다. 그보다는 기독교인 자신들이 그들의 믿음을 다른 사람들의 피로 물들여 왔다.

역사상 열 두 사도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확증하는 증거는 없다. 이들이 견디어 내야만 했다는 다양한 형태의 순교자적 죽음에 대한 증거 또한 절대적으로 없다. 실제로 성경에서 조차도 다만 두명의 사도들에 대한 죽음만 언급하고 있을 뿐이다. 헤롯 아그립바에 의해 사형에 처해진 야고보(이 묘한 친구에 대한 논의는 (James 를 보시라)와 고약한 가룟 유다가 그 사람들이다. 가룟 유다는 나쁜 인간이기 때문인지 여러번(?!) 죽음을 당했다. (아래를 보시라)

초대 교회에서 그들의 정통성과 권위를 세우기 위해 몽상에서 만들어진 전설과 전통만이 이 영웅들과 순교자들의 높이 들려진 이야기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지나치게 많은 모순되는 주장들이나 개변(改變)하는 죽음의 형태들은 존재하지 않은 신인(神人)과 역시 존재하지 않은 그의 동반자들에 대한 총체적 날조를 웅변적으로 증거하고 있다.

 

사도들의 날조된 순교

1. (‘시몬’, 혹은 ‘게바’로도 알려진) 베드로

“(베드로가) 네로 황제에게 교수형을 당했다?!” 이것은 정말 아니다! 이 전설은 2세기 중반 교황이던 아니세터스 Anicetus (156-166) 가 당시 널리 존경받던 폴리캅 (Polycarp of Smyrna). 과의 논쟁에 휘말려 있을 당시 그의 몽상에서 만들어 졌다. 폴리캅은 부활절의 날자 문제로 인해 제기된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그가 사도 요한의 권위를 가지고 말하고 있다고 우겨댔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아니세터스는 베드로를 자신의 몫으로 주장했다. 그리고 베드로야 말로 “사도의 왕자”로서 요한을 이긴다.

2세기 문서로 알려진 클레멘틴스(Clementines)는 베드로를 로마의 초대 감독으로 만들고 있다. 3세기의 ‘발명’에서는 베드로가 25년간 로마교황으로서의 직무룰 수행했던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주장은 베드로가 네로 황제에게 교수형을 당하도록 설정하는 것을 ‘약간’ 어렵게 하지만, 헤이, 이것은 ‘전통’일 뿐이다.(이런 데서 ‘전통’이란 거짓말과 동의어이다: 역자 주).

3세기의 교부 오리겐(Origen)은 더 휘황찬란한 몽상을 만들어 냈다: 베드로가 자신은 자신의 주님과 같은 방법으로 처형될 만큼 가치있는 사람이 못된다는 생각을 했던 나머지 (십자가형 메뉴 중) ‘옵션 B’ 를 택했다는 것이다. 즉 “십자가 형을 거꾸로 매달려서 당했다”는 것이다.

 

2. 세배대 아들 야고보 (큰 야고보?)

사도행전 12장 1절, 2절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그 때에 헤롯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그 후의 전설에서는 야고보를 경비하던 로마 장교가 그 자리에서 개종하고 야고보 대신 자신이 교수형을 당했다는 정말로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가 가미되었다. 더 이후에 날조된 이야기에는 야고보가 북부 서반아지역을 돌아다니다가 James traipsing around northern Spain 순교를 위해 급거 유대아로 귀국했다고 되어있다.

 

3. 세배대의 아들 요한

이사람은 성모 마리아의 시중도 들고 에배소 교회도 이끌어 가며 요한 계시록과 요한 복음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아 있도록 설정되었다. 이 사람은 끓는 기름가마 속에서도 살아 남아 자신의 자연수명을 다 살 수 있도록 and is given a natural death! 허용되었다. 정말 운 좋은 친구일세!

사실은 세배대의 아들 요한은, 그의 형제 야고보가 더욱 극적으로 이야기속에서 퇴장했을 때, 동시에 사도행전의 이야기에서 사라졌다. 요한에 대한 마지막 언급은 역시 사도행전 12장 2절에 나온다. 사도행전 12장 12절 이후부터 나오는 요한은 그의 이명(異名)을 ‘마가’라하는 다른 요한이다. 이 사람은 비교적 비중이 작은 인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복음의 저자로서의 공적을 인정받고 있다.

이 ‘우뢰의 형제’의 추락이 박두했다는 사실은 실상 이미 마가복음에 예시되어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세배대의 부인이 말하는 장면을 삽입하여 좀 더 그럴듯하게 꾸미고 있다). 이 형제들은 이후 부터 앞의 자리를 요구하고 나섰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그들에게 줄 자리가 없었다:

세배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의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주기를 원 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아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예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 열 제자가 듣고 야보고와 요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마가복음 (10장3절5-41절)


지구상에서의 예수의 경력상에 등장하는 “우뢰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마가복음 3장 17절)에게는 비교적 눈에 띄는 역활이 주어진 반면, 초대 교회의 이야기에서는 새로운 야고보, 즉”예수의 형제”와, 또 다른 요한, 즉 바울과 바나바의 짝패(아래 참조)에게 상당히 중요한 역활이 주어진다. 물론, 담네우스 아들 야보고 James bar Damneus 의 죽음 (요세프스 유대 고대사 20.9)이 사랑받는 기독교인인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그림 같은 순교의 근거를 마련해 주고는 있지만, 우리는 이 두사람에 대하여도 아는 바 없다.

 

4.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

경건한 ‘발명’이 안드레에게 선사해 준 멋진 경력에서 안드레는 스키치아(옛날 흑해/카스피 해 북부에 있던 나라)로 부터 희랍까지, 소아시아에서 트라키아(발칸 반도 동부에 있던 고대 국가)까지 안가 본 데 없이 다니고 있다. 이 사람은 십자가형의 메뉴 중 ‘옵션 C’를 선택한 모양이다: 그는 X자 모양의 십자가에서 처형 된 것으로 나온다. 틀림없이 이런 관계로, 그는 십자가 형틀에서도 이틀 간이나 설교를 했다고 한다.

 

5. 빌립

설화는 이 사람을 프라지아(소아시아에 있던 고대국가)와 카르타고(아프리커 북부의 고개 도시국가), 그리고 소아시아 지방에 데려가 놓고 있다. 설화에서는 이사람이 자신의 아내를 개종시켰다는 이유로 그 지방 총독으로부터 십자가 형에 처해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아마도 사랑의 환락을 조금 지나치게 추구했던 모양이다.

약간은 혼란스럽게도 사실은 (성서에는) 두명의 빌립이 나온다. 원래 사도 빌립은 올리브 산에서 예수가 승천하는 것을 목격한 후 이야기 속에서 사라진다. 빌립과 그 일당들은, 사도행전 1장 13절에 의하면, 다락방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사도행전 6장 5절에 보면 두번째 빌립 second Philip 이 과부들을 돌보는 직분이 주어진 일곱명 중 한 사람으로 나온다.

 

6. 바돌로매(나다니엘)

이 사람은 대단한 여행가다.-인도, 알메니아, 에티오피아, 그리고 아라비아 남부! 참으로 경이롭게도 그는 자신이 인도와 아르메니아 두 곳에서 십자가형(가죽을 벗겨내고 목이 짤림)을 받도록 수를 썼다. 참 대단한 일이다. 죽은 후에 조차도 그의 시신은 사방에 흩어졌다. 로마의 한 교회가 그의 시신의 대부분을 획득(?)했지만 11세기에 캔터베리(영국 국교의 총 본산)는 대단한 법썩과 함께 그의 팔뚝을 사들였다. 그의 문장은 비수(날아가는 칼)이다. 멋지다!

 

7. 마태(알패오의 아들 레위)

이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딴 복음서 his gospel – 를 쓸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려 놓고 있다.-그리스도 사후 적어도 20년간. 그는 15년간 예루살렘에 있었고 그 후 페르샤와 에디오피아로 선교를 떠난 것으로 되어 있는데, 물론 이 두 곳에서 다 순교를 당했단다. 중세시대의 초상화에 따르면 그는 안경을 썼다. 이것은 그가 징수한 세금을 세는데 유용했을 것이다.

만일 레위로도 알려진 마태가 알패오의 아들(마가복음 2장 14절)이라면 그는 알패오의 아들인 야고보의 형제(마가복음 3장 18절)일 것으로 추측된다. 반면에 작은 야고보는 축복받은 처녀(성모)의 자매인 글로바(요한복음 19장 25절)의 아내 마리아의 아들로 전해지고 있다. 그렇다면 복음 전도자 마태는 예수의 사촌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사도행전 1장 13절에서는 이 작은 야고보에게 유다(혹은 영어식으로 Jude)라는 형제가 있다고 되어 있는데 마가복음(15장 40절)과 마태 자신의 복음서(마태복음 27장 56절) 두 군데 모두 야고보에게 요세라는 형제가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니 우리는 정상적인 네 형제를 알게 된 셈이다: 야고보, 요세, 유다 –그리고 마태/레위…이는 예수의 네 형제와 너무나도 비슷하다!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모친은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세(한글판에는 요셉으로 나와 있음: 역자 주),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 마태복음( 13장 55절).

 

8. 유다 도마로도 알려진 도마 쌍둥이

이사람 또한 대단한 여행가다: 페르샤에서 부터 남부 인도의 케랄라(Kerala)까지 안 나타난 데가 없단다. 이 4세기의 ‘발명’에서는 참으로 적절하게도 이 쌍둥이에게 두 번의 순교를 선물했다. 하나는 페르샤에서 또 다른 하나는 인도에서. 그는 덤까지 받아서 시리아에 매장 되었다. 그런데 16세기에 폴투갈 밀라포(Mylapore)에 이 사람의 장지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 되었다. 의심 많기로 유명한 도마답게 그는 경건한 헛튼수작들을 대량으로 고취했다: 도마행전(the Acts of Thomas )(그가 인도의 왕을 위해 왕궁을 지었단다. 이것을 믿을 수 있을까?), 도마 계시록(the Apocalypse of Thomas), 도마복음(the Gospel of Thomas), 도마의 유아복음( the Infant Gospel of Thomas) 등이 이 사람의 이름을 차용했다.

자, 아직도 의심의 여지가 있습니까…?

 

9.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작은 야고보- 혹은 의인(義人) 야고보 일까?

설화 제조자들은 이 사람을 위해 마음껏 실력을 발휘한 모양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신전의 첨탑으로부터 30 메터(100 피트) 아래로 던졌 버렸지만 그는 ‘실제로’ 살아 남았다는데 다시 돌 팔매질을 당했다고 한다. 결국 대장장이들이 철판을 펴는 데 쓰는 대형 메에 얻어 맞아 골이 쏫아져 나왔고 신체는 산산 조각으르 톱질을 당해 죽었다고 한다. 이 때 그의 나이가 90세였다고 한다!

물론 우리는 ‘작은 야고보’와 ‘예수의 형제 야고보’를 융합시키려는 것은 아니다(이들에 대한 신원은 제롬(Jerome)과 후세의 카톨릭들에 의해 확인 되었다). 이 모든 신체적 상해는 ‘의인 야고보’가 당한 일들이고 ‘작은 야고보’의 운명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아마도 톱으로 두 토막이 났다는 사실 때문에 이런 혼란이 생긴 것은 아닐까?

 

10. 유다(Jude)/다대오(Thaddeus) /르배오(Lebbaeus) /다대오(Daddaeus)

이 혼란 스러운 사람은 에대사(Edessa)시나 페르샤 어떤 곳에서 심하게 곤봉으로 맞았거나 십자가 형을 당했단다. 명백히, 이 사람의 팬 클럽은 그의 이름이 유다(Judas)와 너무 닮아 상당히 고생을 한 모양이다.

사도 유다(Jude) (이 이름은Judas와 같은 이름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는 구별해서 쓰고 있다: 역자 주)는 흔히 ‘예수의 형제 유다(Jude)’, 그리고 유다서를 쓴 유다(Jude)와 융합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유다서를 쓴 유다(Jude)는 자신을 야고보의 형제이고 예수의 형제가 아닌 예수의 종복(從伏)이라고 자신을 밝히고 있다 (유다서 1장 1절) 그는 또한 사도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자신은 사도중의 한사람이 아닌 것 처럼, 과거시제를 사용하여 말하고 있다(17절). 따라서 그는 열 두 제자 중 한 사람이 될 수 없다.

 

11. 가나안 사람 시몬/셀롯

이 사람에게는 ‘발명’이 너무 늦게 도착했다. 그렇지만 이것이 도착했을 때는 정말 멋지게 보였다-페르샤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졌고 또 수천마일 떨어진 영국(브리튼)에서도 십자가 형을 받았다. 그는 또한 아프리카에서도 설교할 기회를 만들어 냈다. 대단한 활동가다.

 

12. 맛디아(Matthias).

공상소설은 이 사람을 시리아, 가파도시아(Cappadocia), 카스피 연안, 그리고 카니발시 (City of Cannibals)등으로 보낸다 (안드레와 맛디아 행전, Acts of Andrew and Matthias). 이 사람은 화형에 쳐해 졌단다. 그리고 또 예루살렘에서 돌팔매질 형을 받고 목이 잘려 사형되었단다. 정말로 숫자를 채우기 위해 만들어 진 이 사람은 마태와 합쳐지기도 하고 또 어떤 때에는 바울을 열두 사도 안에 넣기 위해 빼버리기도 한다.

 

13. 야고보의 아들 유다(아니면 형제?)

이사람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다. 고취된 느낌이 듭니까?

 

14. 알패오의 아들 레위

그의 ‘분신(alter ego)’ 마태를 참조하시라.

 

마가(요한 마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153-215))나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겐(Origen of Alexandria (182-251)) 모두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c.263-339))가 전달한 소식을 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마가는 알렉산드리아의 초대 감독이었고 네로황제 치하 8년째에 순교를 당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서기 61년이 된다.-이렇게 되면 베드로를 대신해 회고록을 쓴 다음 마가복음으로 출판(?)해 낸 마가가 베드로 보다 먼저 죽었다는 말이 된다. “질질 끌려서 죽었다”고도 하는데 혹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그의 유골-혹은 어떤 다른 사람의 것이-9세기의 베니스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누가.

“올리브 나무에 목매달려 죽었다” 혹은, “84세 까지 독신으로 살다가 죽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신체의 부분들이 파두아(Padua)와 콘스탄티노풀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바울

“네로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건 정말 아니다! No, not really, 그렇지만 전설에 의하면 그는 베드로와 운명을 같이해서 같은 날 죽었다고 한다. 이 경건한 낭만적 이야기들- 바울행전(Acts of Paul), 바울 게시록( Apocalypse of Paul), 바울의 순교(Martyrdom of Paul )와 바울과 테클라 행전(Acts of Paul and Thecla)-은 모두2세기 부터 4세기에 끄적거려진 것들로서 당신이 여태껏 바랬을 수 있는 모든 허황된 허튼 수작들이 모두 망라되어 있다.

 

거듭 죽음-나쁜 놈들은 정말로 나쁜 결과에 봉착한다는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성경적 주제이다.

사울 왕의 매우 다른 4번의 죽음
사무엘서 상(31장 4절) “사울이 자기 칼을 취하고그 위에 엎드러지매…”
사무엘 하 (1장 2절-10절)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나는 아말 사람이니이다 한즉…너는 내 곁에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저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 곁에서 죽이고…”
사무엘서 하(21장 12절) “…이는 전에 불레셋 사람이 사울울 갈보아에서 죽여…”
역대 상(10장 13절, 14절) “사울의 죽은 것은 여호아께 범죄하였음이라 저가 여호아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아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아께서 저를 죽이시고…”

가룟 유다

아! 이 고약하게 보이는 녀석은 유다같이 보이네.

 

 

가룟 유다의 거듭 죽음–

만일 많은 정보원들을 거느리고 있는 유대 당국자들이 진정으로 예수를 체포하려 했다면 예수와 같이 수많은 군중들을 끌어 뫃을 수 있는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자를 확인하기 위해서 (유다와 같은) 내부자를 고용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큰 돈’을 주어가며 이 악운에 직면한 메시아에게 입맞춤을 하도록 했다는 것(마가복음 14장 44절)은 매우 믿기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 보이려는 신학적 상징은 여기서 말하는 ‘역사’가 엉터리 인것 만큼이나 분명하다.

이 “유다의 전설”은 2세기 초 이방인의,혹은 희랍적 전통의 창작물이다. 이는 초대 교회의 반 유대교적이며 반 셈족(anti-Semitism)적인 전통에 초점을 두어 유래된 것이다. ‘가룟’(Iscariot)이란 말은 Sicarii, 라 불리는 유대 반란 단체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 같다. 이들은 유대인 암살자 단체로 (sicae)라 부르는 단도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일차 유대 전쟁 전에 대부분 제거되었다.

이그나타우스는 대략 115년에 쓴 그의 편지에서 가룟 유다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 뿐 아니라 그는 아무 ‘제자’에 대하여도 언급하지 않는다. (바울과 베드로는 ‘사도’로 불렸다, 이는 그 자신과 마찬가지로 ‘선교자’란 뜻이다.)

그러나 신학적인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한 사람의 유대인, 혹은 유대인들’에 의한 배반과 더불어, 신적인 구원자는 몸과 영혼 모두 이방인(Gentiles)의 소유물로 넘어가 버렸다.

이 가련한 주님을 배반한 자-그가 자신을 돕기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사탄이 들어간 자이다(누가복음 22장 3절)-를 처리함에 있어 기독교 필자들은 매우 열심이었다. 130년경 파피아스(Papias)가 이 눈덩이를 굴리기 시작했다.

 

2세기 초:

“유다는 불신앙의 슬픈 본보기로서 이 세상을 돌아다녔다: 그의 몸은너무도 부풀어 올라 마차도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도 지나갈 수 없었다. 그는 마차에 치어서 내장이 쏟아져 나왔다.”
파피아스

성경의 최종판에 실린 동화(童話) 2 선:

마태복음( 27장5절)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 매어 죽은 지라..."

사도행전(1장18절)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4세기에 꾸며져서 덛붙여진 이야기

 

“유다는 이세상에서 아주 비참한 불신앙의 걸어다니는 표본이다….그의 눈 거풀은 너무도 부어올라 그는 빛을 전혀 볼 수 없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의 눈을 찾아 볼 수 없었다….그가 조금 나아졌을 때 그의 온몸에서 고름이 나오고 구더기들이 들끓었다. 너무도 수치스럽게.

많은 고통과 징벌을 받은 후 그는 마침내 자신의 처소에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그곳에서 나는 악취로 인해 그 곳은 버려졌고 지금 현재까지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고 한다. 사실, 그의 몸에서나는 냄새가 하도 심하여 온 땅에 배어들어가 오늘날 까지도 그 부근을 지나는 사람들은 코를 쥐고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


파피아스,"Exposition of the Oracles of the Lord" as quoted in Apollinaris of Laodicea, Christian priest and storytell
er.

 

열 둘이 일곱이 되다-말하자면 말이다.

사도행전에서는 승천한 예수가 열 한명의 사도들에게 예루살렘에서 기디리라는 명을 내린다. 그래서 성령으로부터 권능을 받으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들은 가련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람을 뽑는다. 그들은 ‘유스도’라 하는 바사바 대신 ‘맛디아’를 뽑아서 마법의 열두명을 회복한다. 그런데 사도행전에서 사용한 말들이 상당히 흥미있다:”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그것이다. 이 단계에서도 “열 둘”이란 숫자는 신적이며 신비한 중요성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베드로가 주도한 막간의 촌극(오순절 다락방에서의 설교, 첫 기적, 체포되고 거듭 체포 되는 등등)이 끝난 후, 이 열 두 사도들의 유용성은 그 수명이 다했던 모양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사도들은 밥상 시중 들기나 (이것은 웃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도행전 6장 2절을 보라) 헬라파 유대인들(Grecian)의 과부들을 구제하는 일들을 원치 않았다는 사실이다. 대신 그들은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만 전념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자 일곱을 뽑아 그들에게 세속적인 복지의 일을 전적으로 맡기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신빙성’을 손상시키는 것은 이 순간부터 이 원 유대인 출신 제자들은, 목회만 전담하도록 환경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성경 이야기 속에서 거의 사라져 버린다는 사실이다. 대신 복지 사업 등 허드렛 일을 맡도록 설정된 새 희랍인 출신들이 주목을 끌게 된다.

여기서 제일 주목을 받는 사람은 일장 연설 one big speech 을 하고 또 순교자 1호가 된 스데반이고 그 다음이 빌립(같은 이름을 가진 사도 빌립과 혼동하지 마시라)이다. 이 빌립은 사마리아에서 마술사 시몬과의 경쟁에서 큰 능력을 보인다. 그는 또 에티오피아의 국고를 맡고 있는 큰 권세있는 내시를 개종시킨다. 그 후 이 빌립은 문자 그대로 가자로 부터 “사라졌다가” 25마일 떨어진 아소도(Azotus 혹은Ashdod)에 나타난다. 이게 다 성령의 덕분이다! (사도행전 8장 39절) 그는 밥상 시중 드는 데에는 별 시간을 쓴 것 같지 않다. 그 후 20 몇년 후, 빌립은 예언을 할 수 있는 네 처녀 딸들을 데리고 가이사랴에 있으면서 사도 바울을 자기 집에 유숙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 둘을 제외한 다른 희랍인 출신들-브로고로,니가노르,디몬,바메나,니골라-들에 대하여는 (성경에서) 다시 언급되는 일이 없다. 대부분의 이름 뿐인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이들 또한 단지 숫자만 채웠을 뿐이다. 이 단계에 이르러서는 사도행전은 바울의 모험담에만 열중하게 된다. 예수가 뽑았던 원래의 증인들-지구의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신으로부터 명을 받은, 사람을 낛는 어부들은- 망각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림자의 교회

사도들이 죽은 후 교회 사학자들 조차도 대단한 전도자적 인물들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들은 이그나티우스를 내세우려 했지만 너무 미약하다) 2세기 이상의 기간은 무명의 그림자 교회 들로 채워졌다.

돌이켜 보면 이 빈 공간들은 박해받는 기독교인들로 채워졌다.-이는 물론 궤변이다- 이는 승리감에 도취된 교회가 자신들의 영광을 위해 발명해 내고, 중세 교직자들의 광신적인 마음에 의해 다듬어졌고, 오늘날에는 할리우드의 스튜디오에서 영속화 시키고 있는, 그런 궤변이다.

   

 

전도자들은 “순교자의 피가 교회의 씨가 된다” 는 기발한 이야기들을 꾸며냈다. 그들은 성난 사자와 가학적 변태의 황제에 맞서는, 용감하고 경건하고 겸허하며 고상한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에 의한 지속적인 발전을, 처음에는 비밀스럽게, 그 다음은 공개적으로, 말할 것이다. 신적으로 고무된 냉정함을 가지고 고통에 자신들을 전적으로 의탁함으로서 이 기독교의 개척자들은- 명백하게도- 처음에는 존경을 받아냈고 어둡고 잔혹한 이교도 세상의 마음을 얻어냈다.

 

누가 누구를 박해해?

수세기에 걸쳐, 몇몇 장소에서 순교한 수명의 기독교 순교자들을 꼽아 볼 수 있다. 기독교인들의 숫자는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일반적이고 지속적이었다는 것을 뒷받침 하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이들의 수자는 우리가 공제조합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숫자였고 콘스탄틴의 구데타(기독교 공인을 말함: 역자주)가 있기 전까지는 대부분 범죄자들이나 저소득층에서 차출된 수만명 정도였다. 기독교인들에 대한 일반적인 박해는 기독교 제국이 그들의 잔인성을 이단들에게 돌리면서부터 일어났다.

로마제국은 천년을 넘게 지속해 왔지만 (그 동안) 박해를 받은 기독교인들은 열 두 명이 채 안된다. 기독교 제국 또한 천년을 넘게 지속해 왔는데 그들은 그들의 전 통치 기간을 통해 비-기독교인들을 박해해 왔다.


Persecution – Holy Mother Church Invents Heroic Origins

 

Sources:
The Good Bible – in all its Goodly Versions
Thomas Sheehan, The First Coming (Crucible, 1986)
David Farmer, Oxford Dictionary of Saints (OUP,1997)
Bruce Metzger, Michael Coogan (Eds) The Oxford Companion to the Bible (OUP, 1993)
Edward Gibbon, The Decline & Fall of the Roman Empire (1799)
Michael Walsh, Roots of Christianity (Grafton, 1986)
Robin Lane Fox, The Unauthorized Version (Penguin, 1991)
Helen Ellerbe, The Dark Side of Christian History (Morningstar & Lark,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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